젊고 유능한 정치인 데이비드(맷 데이먼)는 선거 막판, 과거의 추문이 유력 일간지에 보도되면서 선거에서 패배한다. 낙선 직후, 낙담해 있던 데이비드는 우연히 엘리스(에밀리 블런트)를 만나고, 그녀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그리고 얼마 후 버스에서 엘리스와 우연히 재회한 그는, 그녀가 자신의 운명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자신들을 조정국 사람들이라 소개하는 모자 쓴 사람들에게 엘리스와의 만남을 제지당한다. 그들 말에 따르면, 데이비드는 장차 대통령이 될 인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엘리스를 만나면 안 된다는 것. 미래의 대통령이냐, 사랑하는 여자냐.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데이비드는 결국 엘리스를 선택하고, 그녀와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조작 된 미래에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한 남자의 일상이 누군가로부터 감시·조작 당하는 상황’은 흡사 <트루먼 쇼>같다. ‘운명이 먼저인가, 자유의지가 우선인가’를 논하는 부분은 <매트릭스> 같기도 하다. 하지만 <컨트롤러>는 <트루먼 쇼>처럼 ‘빅 브라더’의 폐해를 논하는 영화가 아니다. <매트릭스>처럼 묵직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도 아니다. 삶이 조작되고 있다거나, 자유의지 여부를 따지는 건, 모두 사랑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일 뿐이다. <컨트롤러>가 종국에 당도하려는 건, 사랑이라는 얘기다. 영화는 이 사랑을 굉장히 노골적인 방법으로 설파한다. 사랑이 액션과 스릴러의 서브 텍스트로 작용했던 기존 필립 K. 딕 원작 영화들과 비교하면, 생경한 모습이다.
하지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는’ <컨트롤러> 속, 두 남녀의 사랑은 그리 애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SF원작을 로맨스로 변이시키는 과정에서, 장르적 재미를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이라 불리기도 했다는)조정국 직원들의 ‘아마추어적인’ 어설픈 행동들이 극의 흥을 깨는데 일조한다. 상상력이 풍부하다기보다 허황된 이야기로 읽히는 몇몇 설정 역시 <컨트롤러>가 통제하지 못한 부분이다.(실제로 기자 시사회 장에서 간간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러모로 부실한 통제가 아쉬운 작품이다.
2011년 3월 2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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