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출간된 벤 셔우드의 소설 ‘세인트 클라우드(The death and life of Charlie St. Cloud)’를 스크린으로 옮긴 버 스티어스 감독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감독은 <세인트 클라우드>를 만들며 잭 에프론이라는 배우의 매력에 최대한 집중한다. 그의 파란 눈을 그윽하게 클로즈업 했다가, 괜히 웃통을 벗어던지는 장면을 (필요 이상으로)보여줬다가,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로 여심을 녹인다. 잭 에프론의 팬이라면 웬만한 블록버스터보다 볼거리가 넘치는 영화일 게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매력을 확인한 것 빼고는,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잭 에프론을 빼고 나면 <세인트 클라우드>는 너무나 심심한 판타지 로맨스라는 얘기다.
장례가 촉망되는 요트 선수 찰리(잭 에프론)는 동생 샘과 차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한다. 동생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찰리는 혼자 살아남는다. 이 사건으로 자책하던 찰리 앞에 죽은 샘의 영혼이 나타난다. 아니 찰리에게 죽은 사람을 보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매일 저녁 공터에서 샘을 만나기로 한 찰리는 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명문대 진학도 포기한다. 그로부터 5년 후. 매력적인 여인 테스(아만다 크루)가 나타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찰리는 자신의 삶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동생과 점점 멀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슬퍼하고 있는데, 그 영혼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어 준다. 언뜻 보면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사랑하는 이의 영혼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게 너무나 많다. 현실의 나를 어느 정도 버려야 하고, 주위 사람과의 인연도 적당히 끊어야 한다. 과거에 얽매인 채, 평생 미래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찰리가 그렇다. 죽은 동생을 위해 고향에 남아, 무덤이나 가꾸며 산다. 문제는 찰리 스스로가 그것이 불행이라는 걸 모른다는 거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게 불행이라는 걸, 깨닫는 날이 온다는 거다. 찰리에게 그 깨달음은 테스와의 사랑을 통해 온다. 하나의 머리와 몸으로 두 가지를 병행하기란 쉽지 않는 법. 테스를 생각할수록 동생을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새로운 사랑 앞에서 방황하는 찰리. 상황이 참 미묘하다.
이처럼 <세인트 클라우드>의 밑바닥에는 파생될 수 있는 사건들과 감정들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줄 모른다. 어떤 식으로 씬을 구성해야 판타지가 극대화 될 수 있는지, 이 씬 다음에 어떤 씬을 넣어야 주인공의 심리에 관객들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는지, 영화는 전혀 잡아내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극을 풍성하게 해 줄 판타지는 심심하게 그려진다. 찰리가 품고 있는 감정들은 두서없이 나열만 되다가 카메라 뒤로 숨어버린다. 이 상황에서도 영화가 제대로 지켜가는 건, 잭 에프론의 매력. 그것 하나뿐이다.
출연 배우가 영화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배우가 좋은 영화의 기준이 될 수 는 없다. 잭 에프론만 믿고 가는 영화는 그래서 (작품적으로는)너무 심심하고, (흥행적으로는)위태위태하다. 영화는 잭 에프론의 팬들이 많은 본고장 미국에서도 흥행에 그리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1년 1월 10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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