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커리어우먼 캐시(제니퍼 애니스톤)는 결혼은 아직 생각이 없지만 더 나이 먹기 전에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공수정을 위해 우월한 정자를 기증받는다. 정자 기증 파티가 있던 날 캐시의 절친 월리(제이슨 베이트먼)는 술에 만취돼 실수로 기증된 정자를 엎지르고 만다. 시간이 흘러 캐시는 뉴욕을 떠나고 7년 후에 아들 세바스찬(토마슨 로빈슨)과 함께 돌아온다.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월리. 하지만 매사에 까탈스럽고 고집이 센 세바스찬이 낯설지가 않다. 세바스찬을 통해 자신의 습관까지 발견하는 월리는 세바스찬이 자신의 아들임을 직감하고 7년 전 만취 상태로 저지른 실수를 다시 떠올린다.
<스위치>는 사랑과 우정의 중간 어느 지점에 놓여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다가 막판에 그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는 영화다. 옛날에 사귀었다가 헤어지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캐시와 월리는 연인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다. 연인보다는 오랫동안 편한 친구로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서로에게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살짝 살짝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이를 연인으로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괜한 시도로 지금의 친구 관계마저 깨질까봐 조심스럽다. 하지만 엉뚱한 사건을 통해 둘은 서로에 대한 감정에 솔직해진다. 월리가 인공수정을 위해 기증받은 정자를 엎어버리고 급한 대로 자신의 정자로 채워놓은 것이 둘의 관계를 새롭게 이끄는 원인이 됐다.
영화에서 정자가 바뀌어서 아이의 아빠가 달라졌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설정이지만, 그것 자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아이의 진짜 아빠가 누구냐 보다 사랑 앞에 당당하고 솔직해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꼼꼼하던 월리는 항상 타이밍이 맞질 않아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지 못했지만, 세바스찬을 통해 용기를 얻어 자신의 진짜 마음을 표현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서적인 부분이나 마음가짐, 가치관에 있어서 한 단계 위로 올라서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현재의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변하지 않고는 어떠한 사랑의 시작도 할 수가 없을 테니까.
정자가 바뀌어 아이의 아빠가 달라지고 이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는 설정은 다소 황당하고 억지스러운 면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과정을 자연스러우면서도 유쾌하게 잘 담아냈다. 여기에는 제니퍼 애니스톤과 제이슨 베이트먼은 물론 시크한 아들 토마슨 로빈슨, 월리의 고민 해결사 제프 골드블럼, 캐시의 엉뚱한 친구 줄리엣 루이스, 마초적인 정자기증자 패트릭 윌슨 등 요소요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준 배우들의 공이 컸다. 비록 이야기 자체가 작은 소품 같고, TV 드라마를 보는 듯한 평이한 흐름으로 전개되지만, 의미를 잘 부각시키는 상황묘사와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는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2010년 11월 29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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