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여의도는 테헤란로와 함께 빌딩 밀집 지역이나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는 현대인들의 지친 삶에 심리 스릴러가 더해졌다. 치열한 경쟁사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쉽게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에 내던져진 샐러리맨들은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하지만 이런 비정한 현실 안에서도 나만을 지켜주는 수퍼맨이 있다. 그것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병상에 있고, 회사에서는 정리해고 최우선 대상인 증권가 샐러리맨 황과장(김태우)은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면서 화목한 가정까지 위협받고 있다. 성실하게 일하지만 부장에게 잘 보이려는 후배에게 뒤통수를 맞고,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아내(황수정)는 아이들 친정으로 보내고 급기야 몸을 팔아 이자를 갚는다. 어느날 황과장은 어렸을 때 자신을 지켜줬던 든든한 친구 정훈(박성웅)을 만나 술김에 자신에게 뒷통수를 친 후배를 죽이고 싶다는 얘기를 한다. 다음날, 잔혹한 시체로 발견된 후배. 황과장은 정훈을 의심하면서도 사채업자마저 죽이고 싶다는 속내는 내비친다.

<여의도>는 현대인의 힘겨운 삶과 억눌린 욕망을 다룬 작품이다. 열심히 살면 다 잘 풀리고 성실한 사람에겐 복이 있다는 식의 헛된 희망은 주지 않는다. 현실의 비정함과 경쟁의 치열함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해서 황과장이 처한 상황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부장의 미움을 사 정리해고 되기 직전이고,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린다. 사채를 썼다가 갚지 못해 집과 회사로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치기도 하고, 이런 와중에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믿었던 후배에게 빼앗기고 만다. 급기야 황과장은 자신을 억누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강하게 분노를 표출한다.

<여의도>에서 황과장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생활에 치여 사는 샐러리맨의 모습이다. 그래서 그의 폭력적인 분출은 나름의 쾌감이 있다. 하지만 욕망의 분출 방법으로 사용한 캐릭터 정훈은 신선하지 못하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상만 해왔던 일을 해결해주는 자신만의 수퍼맨이지만, 그의 존재는 여러 영화에서 쉽게 봐왔던 설정이다. 영화는 정훈의 존재를 반전의 카드로 사용하고 있지만, 영화의 중반이 오기도 전에 대부분의 관객이 알아버릴 정도로 익숙한 반전이다.(스포일러가 포함되어 밝힐 수 없다.) 익숙한 아이디어를 사용할 때는 조금 다른 가공법을 쓰거나 촬영이나 편집 등의 기술적인 장치를 통해 차별점을 뒀어야 했다.

전체 설정이나 반전의 참신함이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김태우의 연기는 영화의 중심을 잡아준다. 전체적으로 김태우에 높은 비중이 할애되어 있기 때문에 부담도 컸을 테지만, 김태우는 현대인의 고단한 삶과 내재된 욕망, 분노의 표출 등 다양한 모습을 긴장감 있게 잘 표현한다. 하지만 이에 반해 다른 인물들의 비중은 너무 낮다. 친구 정훈 역의 박성웅은 캐릭터에 맞는 이미지는 보여주지만 분량이 너무 적고, 황수정은 평범한 주부에서 몸을 파는 여자로 변신하지만 캐릭터의 변신 과정에 임팩트가 부족하다.

<여의도>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현실적인 문제를 영화에 잘 대입했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줄 만하다. 하지만 영화의 포인트가 되는 설정 자체가 신선하지 못하고, 기존의 영화들에서 자주 사용됐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송정우 감독이 그려낸 현대인의 각박한 삶과 현대사회의 비정함은 나쁘지 않지만, 살인사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과 그 원인을 밝히는 과정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 현대인의 힘겨운 삶과 현대사회의 비정함에는 공감이 간다. - 영화 전체를 이끌고 가는 김태우의 존재감이 좋다. - 황과장의 수퍼맨으로 등장하는 정훈의 설정이 신선하지 않다. -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한 스릴러적인 부분은 잘 다듬어지지 않았다. - 김태우에 비해 황수정과 박성웅의 비중이 낮고 캐릭터도 심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