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무당의 피를 이어받은 숙희(송혜교)는 무속인으로서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한국계 미국인 피터(롭 양)와 결혼해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서의 새로운 출발이었지만 기독교인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편하지 않고, 낯선 주변 환경에 외롭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옆집 부부 존(아노 프리쉬)과 줄리(애쉬나 커리)와 친해진 숙희는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무속인으로서의 삶을 거부한 대가로 남편이 죽음을 맞고 시어머니까지 자살하게 된다. 그럴수록 옆집 부부에게 의지하던 숙희는 자신의 욕망에 눈뜨며 자신의 주변을 조금씩 파괴하기 시작한다.
<페티쉬>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욕망을 관한 이야기다. 무속인의 삶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떠난 숙희는 끝까지 자신을 쫓아오는 운명에 의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낯선 공간, 낯선 환경에서 믿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인 남편을 잃은 것. 사소한 마찰이 있었던 시어머니는 숙희가 내림굿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경계하며 내쫓으려고 한다. 숙희는 끝까지 운명을 피해보려 집에 남겠다고 하고 결국 기독교인 시어머니가 자살까지 하게 된다. 숙희는 자신의 운명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운명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주변의 것들을 파괴해가면서까지.
숙희가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새로운 욕망에 대한 점철이다. 옆집 부부에게 의지하던 숙희는 결국 존을 유혹하고 존과 줄리를 갈라서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예정됐던 일이기도 하다. 숙희가 자신의 영어이름을 옆집 여자와 같은 ‘줄리’라고 지을 때부터 자신은 줄리를 대신할, 혹은 줄리와 자신이 동일시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편의 외도에 줄리는 숙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변화는 줄리와 숙희를 동일시하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되고 결국 숙희는 줄리의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페티쉬>에서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송혜교의 새로운 모습이다. 단아하고 청순하고 때로는 발랄한 이미지가 강했던 송혜교는 이번 영화에서는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을 연기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을 피해보려 하지만, 운명을 인지한 이후에는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겉모습에서도 검은 머리, 붉은 립스틱, 하얀 옷 등 색상 대비를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여린 모습으로 때로는 강인하고 표독한 모습을 보여주며 캐릭터의 성격을 잡아나간다.
하지만 영화는 송혜교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것 외에 다른 이슈는 없어 보인다.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무속인의 운명이나 내림굿 등은 소재로만 기능할 뿐이고, 동양과 서양의 문화 대비, 이민자들의 삶, 인종과 계층의 차별 등은 그저 언급만 되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 운명을 받아들인 여자와 주변에 관한 스릴러라는 장르적 측면에서도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배우의 변신에 더 눈이 가는 영화다.
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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