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생이던 지완(박현영)은 돌연 사표를 내고 평소 꿈이었던 영화감독이 되기로 한다. 기회를 얻어 시나리오를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몇 년의 시간을 보내지만 영화를 찍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다시 회사를 옮기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지만 요구하는 것만 많을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끝나지 않는 시나리오 수정만 있을 뿐이다. 이런 지완을 보는 가족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남편은 참다 참다 화를 내고, 사춘기 아들은 공부보다는 기타 연습에만 빠져있다. 부서지고 깨지면서도 영화감독의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지완. 엄마로서, 감독으로서 모든 역할을 다 해내고 싶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영화 속 주인공 지완의 모델은 영화를 만든 신수원 감독 자신이다. 돌연 선생을 그만두고 영화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34살에 영상원에 들어간 신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다가 단편영화를 찍었고, 엎어지는 영화들에 대한 다큐를 만들려다가 장편 극영화로 확장해 <레인보우>를 완성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레인보우>는 그래서 더 리얼하게 상황을 묘사한다. 실제 독립영화로 데뷔하는 감독들은 영화감독이나 영화 촬영 현장을 소재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이야기나 영화를 준비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레인보우> 역시 시작점은 같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이 보여줬던 익숙한 클리셰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인공 지완과 지완의 가족들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레인보우>는 일반 관객이 보기에도 재미있지만, ‘영화판’에 인연이 있는 영화인이나 예비 영화인들에게는 남다른 감회를 준다. 감독이 되기 위한 지루한 과정이 사실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어렵게 선택된 시나리오는 몇 년 동안 끝도 없는 수정 작업을 거쳐야 하고, 투자를 위해 상업적인 코드를 만들어야 하고, PD와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집에서는 반백수 취급을 당해야 한다. “시나리오 작업 중이야”라고 말은 할 수 있지만 그 기간이 5년이 되고 10년이 되는 동안 영화감독이라는 글씨가 박힌 명함만 남을 뿐이다. <레인보우> 속 지완 역시 이러한 상황을 고스란히 겪는다. 하지만 창작자의 고통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접근이 아닌 담백하고 솔직하게 담아낸 생활밀착형 접근이라는 점은 다르다. 꿈이나 열정을 운운하거나 잘못된 제작 시스템에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거창한 얘기보다는 지완이라는 인물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아들을 등장시켜 지완으로 하여금 객관적인 시선도 갖게 한다.
이러한 과정에 힘을 보태는 것은 지완 역을 맡은 박현영의 연기다. 굉장히 억울하고 분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닥친 답답한 상황을 감내해내는 박현영은 지완이라는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또한 아들로 출연하는 백소명도 인상적이다.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한 이력이 있는 그는 스스로 “나 사춘기야 질풍노도의 시기니까 건드리지마!”를 외치는 쿨한 아들로 나와 적재적소에 쓴소리를 꽂는다.
세상에는 많은 성공담이 있다. 특히 극적인 성공 스토리는 관객에게 희열을 준다. 하지만 <레인보우>는 실패담을 다룬다. 그것도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는 매우 사실적인 실패담이다. 그것이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수원 감독은 현실적 어려움이나 고충에 넋두리만 늘어놓지는 않는다. “<레인보우>는 밑창 뚫린 신발 같은 영화다. 발이 젖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냥 걸어가 보자는 생각으로 찍은 영화다”라는 신수원 감독의 얘기는 비단 영화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인생이 그렇잖나. 다만 가능성을, 희망을, 꿈을, 웃음을 잃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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