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3D TV를 구매할 필요성은 없었다. 집에 있는 TV는 뚱뚱해서 그렇지 고장 한 번 없이 잘나온다. 또한 집에서도 TV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하지만 두 동생들은 달랐다. <아바타>와 이후 나온 3D 입체영화에 매료당한 여동생은 집에서도 입체감을 느끼고 싶다며 가끔씩 회사에서 얻어온 적청안경으로 TV 프로그램을 시청했다.(절대 입체감이 안 느껴지니 따라하지 마세요!) 남동생도 마찬가지다. 극장에서 월드컵 경기를 3D 입체영상으로 본 동생 역시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입체감을 느끼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하긴 나도 집에서 편안한 자세로 3D 입체감을 느껴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3D TV에 관해 아는게 없었다. 3D TV를 살 때 어떤 점을 고려해서 사야 하는지,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봐야 되는지 몰랐다. 인터넷 초록창에 물어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찍이 전자제품이라면 무조건 사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에게 졸업한지 3년 만에 전화를 했다. 일찍도 전화한다면서 “일단 직하형인지 에지형인지 확인해!”라고 했다. 그게 뭔 소리냐고 다시 물어봤더니 한숨을 내쉬면서 “직하형은 TV 뒷면 백라이트에 골고루 LED를 배치한 거고, 에지형은 TV 테두리에만 LED를 탑재한거야”라고 한다.(LG 3D TV는 직하형과 에지형 둘 다 있고, 삼성과 소니 3D TV는 에지형이다.) 이어서 친구의 3D TV 일장연설이 시작됐다. “3D TV는 패널, 엔진, 백라이트가 중요해. 3D 입체영상을 감상하려면 패널이 안정적이어야 하고, 성능 좋은 엔진이 뒷받침 되어야 좋은 화상으로 구현돼. 그리고 패널 뒤에서 빛을 조절하는 백라이트도 중요하지”라면서 10분 동안의 연설을 끝냈다. 그러나 친구의 말을 듣고 있자니 3D TV를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걱정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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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역시 가전제품은 일단 보고 결정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그전에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가야 한다는 속담처럼 어떤 종류의 3D TV가 가장 많이 팔리고 가격은 어떤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컴퓨터 ON! 현재 국내에 출시된 3D TV는 삼성, LG 소니 그리고 현대 아이티에서 나온 제품. 각종 쇼핑 사이트를 돌아본 결과 역시 대세는 3D LED TV였다. 가격대는 삼성 3D LED TV 46인치는 300~340만원대, 55인치인치는 470만원 내외였다. LG 3D LED TV는 47인치 260~320만원대, 55인치는 420만원대였다. 7월 22일부터 판매를 시작한 소니 3D LED TV는 52인치가 430만원대, 60인치는 740만원대, 현대 아이티 3D LCD TV는 46인치가 300만원대로 판매되고 있었다. 일반 TV보다는 높은 가격대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3D TV 구매를 고사하고, 그 돈 보태서 전세집이나 알아보자고 두 동생들을 설득했지만, 벌써 3D TV를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아이들의 두 귀는 내 말에 요지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 다음날 매장을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매장 직원의 우랑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3D TV 좀…”이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혼수 구입 때문에 오셨군요! 요즘 신혼부부들은 3D TV를 많이 구입하시더라고요”라며 판매할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붕어빵 같이 닮은 동생을 약혼녀로 아는 그 직원에게 요즘 3D TV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물어봤다. “처음 출시됐을 때는 구매하는 사람보다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더 많았죠. 근데 월드컵이 열린 6월에 들어오면서 구매하시는 분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어요” 평균적으로 종전보다는 30~40% 정도 판매량이 늘었다는 직원의 말에 3D TV의 관심도를 알 수 있었다. 일단 제품을 눈으로 확인하는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3D TV를 보여달라고 하자 직원은 바로 3D TV용 입체안경을 건네줬다. 쇼핑 사이트에서 본 3D LED TV를 실제로 보니 높은 가격은 뒷전이고 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잘 빠진 디자인은 둘째치고 입체감이 놀라웠다. 직원은 계속해서 눈이 피로한지 입체감은 잘 느껴지는지를 물어봤다. 간혹 눈이 어지럽다거나 입체감을 못 느낀다는 고객님들이 있어서 확인차 물어본다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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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현대 아이티에서 나온 3D TV는 없냐고 물어봤더니 바로 안내해줬다. 직원은 현대 아이티 풀HD 3D LCD TV와 LG 엑스캔버스 3D LCD TV를 보여줬다. 앞에서 체험해 봤던 3D TV가 셔터 글래스 방식(안경에 내장된 셔터가 양쪽 눈을 번갈아 가며 가려주는 식으로 양쪽 눈에 각각 다른 영상이 들어오게 조절해 입체효과를 내는 방식)인 반면 현대 아이티 풀HD 3D LCD TV와 LG 엑스캔버스 3D LCD TV는 편광 방식(왼쪽 영상과 오른쪽 영상이 TV의 편광필름에 따라 갈라진 뒤 안경이 좌우 영상을 선별해 입체효과를 내는 방식)을 쓰고 있는 TV라 말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눈의 피로가 덜한 것 같다고 하니 편광 방식 3D TV는 셔터글래스 방식 3D TV보다 색의 왜곡이나 어지러움이 덜해 장시간 시청해도 별무리가 없다고 했다. 또한 셔터글래스 방식 안경은 내장된 셔터 장치가 있기 때문에 12 만원대(소니는 14만 8천원)로 가격이 비싸고, 무겁고 수시로 충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편광 방식 안경은 셔터글래스 방식 안경보다 가볍고 가격도 만원대로 저렴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편광 방식 3D TV는 셔터글래스 방식 3D TV보다 밝기나 선명도 그리고 해상도가 떨어진다고 단점을 말해줬다. 또한 LCD는 LED와 비교했을 때 시야 각도에 따른 화질의 변화가 심하다고 했다. 이어서 3D PDP TV를 보여줬는데 260만원대로 저렴한 반면 LED, LCD보다 두께가 두껍고 전력소모가 높다는 단점을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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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가격에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그 때 동생은 이제 세상의 변화에 맞춰 살자면서 내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뽑아 들고 결제하라고 압박한다. 아! 놔…! 결국 46인치 3D LED TV를 선택. 카드 할부로 구매하고 기간을 지정한 뒤 영수증을 받았다. 4일 후, 설치기사 아저씨가 3D TV를 갖고 방문했다. 일단 설치기사 아저씨는 집의 구조와 함께 놓을 위치를 설정하고 설치를 시작했다. 아저씨는 방송이 잘 나오는지 점검하고 이어 고수들의 비급을 전하듯 설명서에 적힌 내용을 구두로 전달했다. 그리고 지난 5월 19일부터 지상파 방송사의 3D TV 시험 방송이 나오는 채널 66번을 통해 3D 입체영상을 맛보게 해줬다.
설치기사 아저씨는 “지난 1월부터 스카이라이프에서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24시간 방영하는 3D 입체방송이나 SBS에서 월드컵 23경기를 3D 입체영상으로 중계한 것 외에는 현재 3D TV를 사도 볼 수 있는 컨텐츠가 부족한 형편이에요”라면서 밥 벌어먹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힘내시라고 오렌지 주스 한잔을 드렸더니, 앞으로 지상파 방송사에 제작할 예정인 다양한 컨텐츠가 활성화 될 것이고, 올해 극장 개봉했던 <아바타>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 3D 블루레이 타이틀로 나올 예정이란 말을 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3D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구매하는 건 어떻겠냐고 판매 권유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마시던 주스잔을 빼앗아들고 돌아서는데, 문뜩 설치기사 아저씨가 판매직원하고 똑같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설치기사 아저씨가 온데간데 사라지더니 3D TV에서는 판매직원이 등장해 “3D 블루레이 플레이어 구매하세요!” 라고 반복 재생이 되었다.
아! 꿈이었다. 컴퓨터는 3D TV 구매 쇼핑 사이트에 멈춰있었고, TV에서는 3D TV를 판매하는 홈쇼핑 프로그램이 나왔으며, 바닥에는 적청안경과 대리점 전단지가 뿌려져 있었다. 3D TV를 갖고 싶었던 나의 일장춘몽이었던가! 꿈이라고 하기에는 3D TV의 입체감만큼 너무나 생생했던 일들. 진정 3D TV를 갖고 싶었지만 박봉에 시달려 꿈속에서나 살 수 있는 나의 3D TV 구입 여정기는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2010년 8월 4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사진출처_삼성전자, LG전자, 소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