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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뫼비우스의 띠로 이뤄진 초현실적인 세계
인셉션 | 2010년 8월 2일 월요일 | 허남웅 이메일

* 주의! 영화 관람을 방해할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인셉션>을 보고 나오면서 ‘크리스토퍼 놀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피터 트래비스, 로저 이버트 등 해외 유명 평자들의 평가처럼 절대적인 걸작이라거나 우리 시대의 클래식이라고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다.(극중 생각의 조작이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대사를 남발하고 무리하게 장면을 늘이는 등의 무리수가 종종 눈에 띈다.) 다만 기존의 재료를 가지고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해 새로운 ‘무엇’으로 뒤바꿔놓는 그의 연출력에는 특별한 것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인셉션>은 타인의 꿈속에 잠입해 생각을 심거나 혹은 훔쳐오는 이들의 활약을 담았다. 데뷔작 <미행>(1998) 이후 놀란 최초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인 <인셉션>의 이야기는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새롭지 않다. 꿈의 세계에 접속해 생각을 읽는다거나 조작한다는 내용은 이미 타셈 싱의 <더 셀>(2000),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2004) 등이나 소설 쪽에서는 로저 젤라즈니와 윌리엄 깁슨이 각각 <드림 마스터>와 <뉴로맨서>에서 다뤘던 것이다. 팀원 각자의 장기를 살린 치밀한 계획을 통해 임무를 완수한다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2001) 시리즈와 닮았다. 심지어 <인셉션>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제3자를 끌어들인 후 상황을 ‘조작해’ 뒤집어씌우는 <미행>의 이야기를 꿈의 구조로 번안한 것에 가깝다.(두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코브인 것과 그들의 극중 역할이 도둑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형식 속에 쌓아올려 새롭게 만들기를 즐겼다. 시간과 공간을 교란한 편집으로 비선형적 서술을 선보였던 <미행>,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처지를 관객에게 이입시키기 위해 7개의 에피소드를 10분씩 시간 역순으로 진행한 <메멘토>(2000), 허구의 코믹스에 사실주의를 접목한 <배트맨 비긴즈>(2005)와 <다크 나이트>(2008)까지, 놀란의 연출은 설계자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았다. <인셉션>도 내용이 아니라 형식과 구조로 승부를 보는 영화다. 꿈속을 탐구하는 영화답게, 그것도 꿈속의 꿈, 더 나아가 꿈속의 꿈속의 꿈으로 확장하며 아예 다중의 꿈을 통해 영화적인 미로를 설계해버린다.
극중 미로의 구조는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꿈을 통해 드러나는 강박관념, 불안감, 무의식 등 심리적인 상태로 구획 지어진다. 자칫 관객들에게 어렵게 다가갈 수 있는 소재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인셉션>은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한 영화다. ‘꿈의 미로’라고 했을 때 우리는 흔히 장자, 프로이트, 니체 등을 이정표삼아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꿈의 시각화를 감안했을 때 <인셉션>은 개념정리와 해설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그리고 극중에서 충분히 설명되기도 한다.) 놀란이 참조했음이 명확해 보이는 두 명의 화가 M.C. 에셔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 익숙한 구도가 <인셉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힌트다. 이는 이 영화의 지향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입구와 출구가 동일한 미로

놀란 감독이 <인셉션>으로 설계한 미로는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출구가 동일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형태다. 코브가 경찰에 쫓기는 수배자 신분인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그로인해 집을 떠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만날 수 없는 코브는 기업 총수 사이토(와타나베 켄)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합병을 위해 라이벌 기업의 후계자 피셔(킬리언 머피)의 생각을 개조해달라는 것. ‘생각 추출자’ 코브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수배 혐의를 풀어줄 것을 조건으로 건다. 다시 말해, <인셉션>은 집 떠난 코브가 누명이라는 ‘이상한 고리’를 풀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대개 누명을 소재로 한 영화는 오인 받은 주인공의 꼬인 사연을 풀기 위해 알리바이, 증거, 과학적인 수사 등과 같은 이성적인 개념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셉션>은 이성의 영역을 무너뜨려 꿈이라는 가상 세계 속으로 침투한다. 물론 현실의 시간이 꿈속에서는 5분의 1의 단위로 흘러간다는 등의 꿈과 관련한 나름의 과학적인 현상을 접목하기도 한다. 다만 어쨌든 인간의 심리는 과학이나 이성으로 그리 쉽게 증명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런 탓에 수학적인 연출로 정평이나 난 크리스토퍼 놀란이 꿈의 ‘설계’를 통해 코브의 심리를 드러낸다는 설정은 확실히 이율배반적으로 비친다.

이런 이율배반의 미학이 가능한 세계는 예술이 유일하다. 특히 에셔는 공간의 구획을 무화함으로써 현실과 가상의 벽을 무너뜨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수학적인 계산에 따라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균등하게 구획이 분할되고, 경계가 존재하지 않아 여러 세계가 공존하며, 그럼으로써 그림 속 세계는 무한대로 확장한다. 이는 놀란이 <인셉션>에서 보여주는 꿈의 개념과 조응한다. 극중 꿈과 현실의 경계는 희미하고, 현실에서 꿈으로, 꿈에서 꿈으로, 다시 꿈의 꿈에서 꿈으로 무한히 증식하며, 그럼으로써 늘어나는 세계를 신(scene)별로 교차(혹은 분할)하는 연출을 통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실제로 <인셉션>에는 에셔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들이 종종 튀어나온다. 일례로, 에셔가 즐겨 그렸던 거울에 비춘 상은 설계자로 영입된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가 처음으로 꿈의 세계를 경험할 때 활용된다. 거대한 거울로 현실과 가상의 테두리를 지워 세계를 확장하는 장면에서 제시되는 것. 코브의 오랜 친구 아더(조셉 고든 레빗)가(역시 꿈속에서!) 그들의 임무를 방해하는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해 계단의 구조를 조작, 끊어지지 않는 선처럼 만드는 것이 또한 그렇다. 이처럼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이상한 고리는 화가 에셔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다.
<인셉션>은 앞서 언급했듯이 뫼비우스의 띠를 이야기의 구조로 삼는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직선을 이루지 않고 원을 그려 서술의 궤도가 돌고 돈다. 현실이 꿈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되고, 출발점이 귀환점이 되고, 다시 귀환점이 출발점이 되는 등의 상반되는 두 가지 가능성의 공존 혹은 순환. 하여 <인셉션>의 결말은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무한대의 길이 열리는데 이 영화를 보고 느끼게 되는 모호함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래서 <인셉션>을 지배하는 영화적 정서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초현실주의’가 될 텐데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역시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인용된다.

초현실적인 꿈의 세계

꿈의 세계는 현실을 초월한다. 이성과 상식을 넘어선 세계다. 초현실적인 세계의 묘사에 관한한 할리우드는 단연 독보적이다. 그들이 가상의 천지창조를 밥 먹듯이 이뤄내는 배경에는 CG의 힘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하여 티가 난다. 허황한 맛이 없지 않다. 놀란은 좀 다르다. 그는 CG보다 여전히 특수효과를 신봉하는 고전주의적 연출가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묘사한 꿈속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한 눈에 보면 현실인데 현실에서 통용되는 물리력이 갑자기 무너지는 순간, 그제야 꿈이라는 실체가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인셉션>의 꿈의 세계는 개별적이지 않고 현실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360도 회전하는 호텔 복도에서의 액션 시퀀스는 단적인 예다. 피셔의 꿈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인데 복도가 회전을 하는 이유는 잠을 자는 현실의 피셔의 육체에 충격이 가해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실제 촬영은 세트로 지은 복도를 전기모터를 이용해 회전시켰다고 한다.) 이처럼 꿈과 현실의 연관성을 이용해 놀란이 창조한 꿈의 풍경은 발상의 전환을 꾀하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파리 시내가 반으로 접혀 하늘을 가리고 도시에서나 볼법한 첨단의 건물들이 파도치는 해변에 즐비하며 ‘킥’(kick)이라 하여 현실에서 잠든 신체에 추락을 가하거나 특정음악을 들려주면 꿈속은 무중력 상태로 돌변해 잠을 깨게 된다.

이질적인 요소의 하나 됨, 즉 인식의 경계를 허물어 기이함을 부여하는 기법을 들어 미술계에서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고 부른다. 르네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의 대가다. 에셔 그림의 주제가 <인셉션>의 구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면 마그리트의 그림은 극중 꿈속 장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활용된다. 영화의 첫 장면, 파도치는 해변 위에 쓰러져있는 코브의 이미지는 <집학적 발명>이, 이동하는 차속에서 복면을 쓰고 잠이 든 인물들은 <연인들>이, LA 시가지 도로 한가운데 별안간 출몰하는 기차 장면은 <피레네 산맥의 성체>가, 그리고 코브의 ‘림보’(원초적인 무의식의 세계) 속 허물어진 빌딩 사이에서 홀로 제 모습인 집은 <빛의 제국>이 연상되는 것이다.

이 장면들의 공통된 특징은 ‘낯섦’이다. 낯선 광경은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놀란은 굳이 알록달록한 이미지를 동원하지 않고도 일상을 낯설게 함으로써 꿈의 효과와 더불어 그 정체에 대해 보는 이를 궁금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마그리트가 궁극적으로 의도한 그 자신의 예술적 장기다. 이를 위해 마그리트가 동원한 방법을 들어 위에 언급한 <인셉션>의 장면들이 의도한 바를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해변 위에 쓰러진 코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복면을 쓴 이들은 혹시 죽은 것이 아닐까? 도로 위에 나타난 기차는 코브 이하 팀원들 앞으로 닥칠 파괴의 전조인가? 폐해 속 집은 불안정한 코브의 심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이미지?
마그리트와 에셔 모두 초현실주의를 지향하지만 마그리트는 철학적이고, 에셔는 수학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점에서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그중 크리스토퍼 놀란이 마그리트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뽑아낸 장면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불길하거나 암울한 기운을 뽐낸다. 그것은 현실의 물리력이 파괴됨으로 인해서 꿈이라는 공간을 상기시키기 때문일 터. 극중 꿈을 침투 당하는 당사자 코브(아리아드네는 코브가 가진 불안한 심리의 정체를 풀기 위해 코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의 꿈에 수시로 잠입한다.)와 피셔의 현실이 어려움에 처할수록 이들의 꿈의 내용은 더욱더 초현실적으로 변모한다.

현실이 더 초라해지고 끔찍해질수록 그에 맞춰 꿈도 합을 맞추니, 꿈속에 현실이 ‘실재’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게다. 그렇다면 현실은 현실의 세계뿐 아니라 꿈에도 속하는, 일종의 ‘증강현실’이 된다. 이렇게 꿈과 현실이, 가상과 실제의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무한으로 확장해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진짜 세계다. <인셉션>은 꿈의 침투라는 오래된 설정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은유한다. 그러니까 놀란 감독은 <인셉션>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발을 딛고 있는 세계는 꿈인가? 현실인가? 실제인가? 가상인가? <인셉션>은 여기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답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이다.

2010년 8월 2일 월요일 | 글_허남웅 (영화 칼럼리스트)    

27 )
dramawow
우오.... 멋지다~   
2010-08-25 22:58
puregirl1023
잘봤습니다~   
2010-08-15 21:25
niji1104
정말 찬사가 쏟아질 수 밖에 없는영화   
2010-08-14 19:45
sorigasuki
그저 신기하기만 할 뿐입니다.   
2010-08-12 18:17
nada356
신기신기   
2010-08-11 13:24
eyk5445
최고에요 ㅋㅋㅋ   
2010-08-08 01:08
shshs823
와...진짜 신기해요!!!   
2010-08-07 07:59
aarprp
wow   
2010-08-0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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