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손톱> 등의 장르소설로 유명한 김종일 작가의 블로그(http://cafe.naver.com/kimjongil.cafe)를 방문했다가 그가 <이끼>의 소설 판을 쓰게 된 사실을 알게 됐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소설화한 <이끼>에 대해 김종일은 자신의 블로그에 “워낙 원작을 좋아했던 터라 소설화 작업 의뢰가 들어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다.”고 밝혔다. 블로그 글을 읽고 김종일과 <이끼>는 꽤 괜찮은 조합이라고 생각했더랬다. 인간관계의 미세한 균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병폐로 소우주를 건설하는 그들의 작풍이 통하는 데가 있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김종일과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웹툰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알레고리가 뛰어난 작품이라 소설로 구성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제안이 들어왔다.”며 <이끼>와의 남다른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종일은 한국 장르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또한 첫 장편소설 <손톱>을 비롯해, <몸> <일방통행> <벽> 등 작품을 발표하는 족족, 심지어 출간되기도 전에 영화화 판권이 이뤄질 정도로 충무로가 가장 주목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당장이라도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볼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촬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매일 꾸는 악몽이 현실에서 재현되고 그럴 때마다 손톱이 빠지는 아이 잃은 어미의 얘기를 다룬 <손톱>은 영화사 내부 사정으로 오래 전에 이미 영화화가 중단된 상태이며 ‘블랙 프로젝트’로 알려진 단편 <일방통행>은 제작사와 투자사가 모두 만족할만한 시나리오를 얻기 위해 좀 더 시간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기형 감독(<여고괴담><폭력서클>)과 원작 계약을 맺었던 <몸>은 각색 작업 중이란 얘기가 2년 전이었는데 지금은 계약기간이 만료돼 빠른 시일 안에 영화화가 힘들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가 아니라 영화화된 웹툰을 다시 소설로 옮긴 작품으로 독자를 찾아온 것이 한편으론 묘하게 느껴진다. 그런 만큼 부담도 있었다지만 김종일은 웹툰을 본 독자에게는 소설의 맛을 음미할 수 있게끔, 웹툰을 보지 못한 독자에게는 소설을 통해 <이끼>의 진면목을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단다. 결국 이 작업의 관건은 윤태호의 세계관을 김종일의 세계로 큰 충돌 없이 이식하느냐 인데 김종일은 중심적인 이야기와 주제는 그대로 가져가되 부분부분 디테일한 면에서 자신만의 인장을 찍는 방식으로 <이끼>의 소설판을 완성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원작에서는 상세히 밝히지 않은 류해국의 전사(前史), 즉 마을로 오기 전까지의 사정을 ‘김종일스러운’ 사건으로 좀 더 구체화하였다. 또한 비밀통로가 초반부에만 활용되고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되는 감이 있어서 결말부에 좀 더 활용을 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취하되 내 나름의 방식으로 김종일 월드를 심었다고 보면 된다.”
소설 <이끼>에 대한 얘기를 듣고 영화보다 더 흥미가 동했다. 개인적으로 영화 <이끼>에 대해서는 실망한 편이다. 몰입해서 보긴 했지만 소품부터 심지어 대사까지, 영화는 웹툰을 그대로 재현하기에 급급해 영화적인 표현과 재미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한 인상을 받았다. 유선이 연기한 영지의 역할에 변화가 있고 원작 웹툰에서의 캐릭터를 좀 더 희화화하며 유모를 강조하고 정치적인 은유의 폭을 많이 줄이긴 했지만 그것을 가지고 영화적인 변형을 가했다고 하기에는 다소 민망한 수준에 가까웠다. 오히려 상영시간이 대중영화로는 상당히 긴 2시간 40분에 달하는 것만 보아도 연재 회수가 80회에 달하는 웹툰을 각색하는데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가 상대적으로 증명이 된다. 그래서 류해국의 배경을 강화하고 이야기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능하는 비밀통로의 활용 폭을 넓히는 등 해당 매체의 특색을 고려한 각색에 있어서는 소설 <이끼>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소설 <이끼>는 영화의 개봉에 맞춰 출간이 됐다. 이와는 별도로 김종일 작가는 여전히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이끼>를 제외하고 가장 빠르게는 앱스토어를 통해 공개되는 매드클럽의 <한국 공포 문학 괴담선> 중 김종일의 작품이 7월 넷째 주 중 선보일 예정이고 복간과 함께 휴간의 날벼락을 맞은 <판타스틱>에서 연재하던 장편소설 <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가 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상태로, 가을 쯤 출간이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는 조선 시대 X파일이라는 콘셉트로 케이블TV ‘tvN'을 통해 8월 방영 예정인 <기찰비록>의 외전을 미디어다음에서 연재하기로 해 한창 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김종일은 근황을 밝혔다. 한국 장르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답게 그는 여전히 바쁘게 작품 활동에 매진 중이다. 비록 김종일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당분간 볼 수 없지만 꾸준히 그의 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건 한국 장르소설계를 생각할 때 다행한 일이다. <이끼>는 비록 김종일 작가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그의 개성이 묻어난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 글_허남웅(장르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