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목형(허준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유해국(박해일)이 30년간 은폐된 마을에 찾아온다. 하지만 이장 천용덕(정재영)을 중심으로 한 마을 사람들 덕천(유해진), 석만(김상호), 성규(김준배) 등은 해국을 경계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뭔가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해국은 직접 비밀을 밝히기 위해 마을을 조사한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장이 마을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이며 각 집들이 비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마을과 이장의 신격화에 자신의 아버지가 관계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해국은 다른 사건으로 악연을 맺은 박검사(유준상)에게 연락해 마을에 대한 정보를 전하고, 무리 중의 유일한 여자인 영지(유선)는 조용히 해국을 돕는다.
언뜻 줄거리만 보면 한 마을에서 일어난 미스터리한 사건을 이방인인 유해국이 풀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끼>는 그런 장르적인 흐름을 따르는 영화가 아니다. 분명 중요한 것은 유목형의 죽음과 그에 관련된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지만, 영화는 내러티브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지닌 사람 사이의 공포, 고립된 마을이 주는 스산함, 과거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등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집단 권력의 광기와 공간이 주는 막연한 공포, 인간 내부에 잠재하는 이기심과 공격성을 파헤친다.
<이끼>가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원작의 힘이다. 이미 웹툰으로서 큰 인기를 누렸기 때문에 이야기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다. 다만 웹툰과는 다른,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통해 얼마나 잘 구현되느냐가 관건이었다. 선결될 문제는 웹툰의 엄청난 분량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줄이느냐와 다양한 캐릭터들의 비중과 균형을 어떻게 조절하느냐 였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해야만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우석 감독은 몇 가지 영화적 장치로 이를 극복했다. 덕분에 영화는 웹툰의 기존 팬들은 물론, <이끼>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도 재미를 준다.
영화적 장치란 단순히 연출에 관한 것은 아니다. 드림팀이라고 할 수 있는 캐스팅이 그렇고, 가장 중요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는 로케이션과 미술이 그렇다. 영화 제작 전부터 캐스팅은 큰 이슈가 됐다. 원작의 모델이기도 한 박해일을 해국에 캐스팅한 것은 예상됐던 일이지만, 가장 큰 비중인 이장 역에 정재영을 캐스팅한 것은 의외의 카드였다. 하지만 정재영은 하루 3시간이 넘는 특수 분장을 참아내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장 역을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미술 역시 완성도가 높다.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마을이지만, 어디에도 없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작업은 180일에 걸쳐 전체 제작비의 60% 이상이 투입됐다. 고립된 느낌을 살리면서도 모두에게 공유되는 마을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비밀통로는 물론, 이장의 집을 중심으로 한 눈에 감시가 가능하게 설계되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는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으로, 공간만으로도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강우석 감독은 <이끼>를 통해 한국적인 스릴러와 원작이 있는 영화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그리고 평소 장기를 보여줬던 소셜 코미디를 거의 섞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도 자신이 갖고 있던 기존의 장기들을 잘 살렸다. 사건을 계속 일으키며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빠른 연출이나 낯선 마을의 이방인인 해국과 관객을 같은 입장에 놓는 설정은 2시간 40분이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2010년 7월 12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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