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문>의 당황스럽고도 갑작스러운 결말을 보며 든 생각이 <이클립스>에서 확실해졌다. <뉴문>은 <이클립스>를 위해 존재한 징검다리였음뿐임을. <뉴문>이 사랑의 전주곡이라면, <이클립스>는 하이라이트다. 영화는 <뉴문>이 끝난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늑대인간 제이콥(테일러 로트너)대신 뱀파이어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를 선택한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오늘도 오매불망 뱀파이어가 되기를 희망한다. ‘액면적인 이유’는 에드워드와 불멸의 사랑을 하기 위해서지만, 평생 이팔청춘일 남친보다 늙어간다는 불안감도 그 선택을 부추긴다.(그지?) 하지만 제이콥의 계속되는 구애에 벨라는 흔들리고, 자신이 지조 있는 여자라고 믿는 벨라의 착각(?)은 애꿎게도 고문을 부르고 만다. 그 이름도 어여쁜 ‘희망 고문’을 말이다. 뒤에서 호박씨 까는 듯한 벨라의 ‘희망고문’에 제이콥과 에드워드가 흔들리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훈계해 무엇하랴. 이 ‘희망고문’에서 이 영화의 로맨스가 파생되는 걸. <이클립스>는 10대 소녀들이 바라마지 않는 연애에 대한 총체적인 백일몽이다. 다이아몬드 광체 발하는 로맨틱남과 초콜릿 복근이 더 없이 어울리는 구릿빛 짐승남이 나를 두고 아옹다옹한다? 오늘 내일 하는 할머니도 주먹 불끈 쥐고 일어나 회춘할 일이다. 캐서린 하드윅, 크리스 웨이츠에 이어 메가폰을 잡은 데이비드 슬레이드는 소녀들을 밤 잠 설치게 할 방법을 아주 잘 아는 듯하다. 일편단심 민들레인 제이콥의 순정으로 소녀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벨라의 하룻밤 구애를 참아내는 에드워드의 ‘내 여자는 소중하니까요!’ 정신으로 소녀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내 영혼은 잃었지만 네 영혼은 지켜주고 싶어” 류의 낯간지러운 대사들도 거침없이 투하한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낯간지러움을 영화 스스로가 조롱거리 혹은 무기로 삼는다는 것이다. 웃통 훌훌 벗어젖히기가 취미인 노출증 환자(?) 제이콥에게 에드워드가 쏘아 붙인다. “쟤는 셔츠도 없대니?” 아니, 이것은 관객이 하고 싶은 말? ‘자뻑’인 걸 모르고 똥 폼 잡는다면 가소롭다며 헛웃음이라도 날릴 텐데, 영화 스스로가 ‘자뻑’임을 인정하고 있으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이런 장면도 있다. 자기를 두고 싸우는 두 남자를 향해 벨라가 말한다. 그것도 아주 순진무구한 얼굴로! 진지하게! 진심을 한 바가지 담아 이렇게, “나를 스위스(영세 중립국)라고 생각해!” 이미 오그라들대로 오그라든 손발이 벨라의 저 당당함에 화들짝 놀라 쫙 펴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펴진 손으로 박수를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순간 욕하면서도 보게 된다는 그 이상한 중독성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3편에 이르러 강렬해진 건 캐릭터와 액션이다, 라고들 하지만 그것들 역시 사랑에 철저하게 복무한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해 눈속임이다. 영화는 칼렌가 가족들이 뱀파이어가 된 사연들을 삽입하고 빅토리아의 공격을 빌미삼아 액션도 구겨 넣는다. 이쯤이면 예상 했을 테지만, 칼렌가 사람들이 뱀파이어가 된 이유는 하나 같이 사랑 때문이다. 빅토리아가 벨라를 능지처참하려고 달려드는 것도 애드워드에게 사랑하는 남친을 빼앗긴 복수심에서 기인한다. 그러니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이들 궁극의 종착지는 결국 사랑, 이 죽일 놈의 사랑인 셈이다. 최근 이토록 주제 의식 뚜렷한 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낭만쟁이들. 누군가에게는 유치한 사랑 놀음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가슴 벅찬 애잔함일 게다. 영화는 그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 지점에 소녀들은 어김없이 걸려든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달려간다. 이 죽일 놈의 사랑을 경배하며.
2010년 7월 6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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