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유명한 고유명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제목이지만 <필립 모리스>는 그 익숙한 고유명사와 무관한 또 다른 고유명사로서의 의미를 품고 있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실화를 바탕으로 둔 영화임을 거듭 강조하는 <필립 모리스>는 능수능란한 사기꾼이자 탈옥수였던 러셀의 활약상(?)을 다룬 러브스토리(!)다. 여기서 필립 모리스는 바로 그 러셀이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 말 그대로 필립 모리스(이완 맥그리거)인 것. <필립 모리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기꾼이자 탈옥수인 러셀의 실화적 삶을 다룬 극영화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이, <필립 모리스> 역시 그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진짜 사연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흥미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다양한 사기와 탈옥 전력을 지닌 남자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흥미 본위의 이야기로서 유효한 것만은 아니다. <필립 모리스>는 케이퍼 무비와 같은 활기로 사건을 전진시키고 축적된 서사의 정보를 밑천으로 그 결말에 다다라 숙성된 성장드라마와 깊은 로맨스의 정서를 끌어내는 작품이다.
물론 실제 인물의 행위를 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필립 모리스>가 일종의 연출적 과장 혹은 비약을 가미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짐 캐리 특유의 연기적 특성은 실제 인물의 행위 자체의 진실성과 무관하게 캐릭터를 극적인 방식으로 포장하고 있으며 이는 <필립 모리스>의 분위기나 뉘앙스를 지배하는 절대적 특성으로 발전된 것처럼 보인다. 또한 게이 로맨스물로서 두 커플을 묘사하는 방식 혹은 배우들의 연기방식은 동성애자에 대한 특정한 편견이 고스란히 활용됨으로써 대상을 희화화시키고 있다는 혐의에서도 일부나마 자유롭지 않다.
이는 <필립 모리스>가 인물보다는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전기적 재현 영화라는 증거에 가깝다. 그만큼 영화가 앞세운 실제 인물의 행적은 서사적으로 사실적이되 행위적으로는 과장돼 있으나 왜곡되지 않았다. 또한 <필립 모리스>는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같은 작품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그것은 인물을 둘러싼 시대적 분위기 덕분이다.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스크린에 옮겨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겠지만 인물의 범죄행각이 그 시대에서 발견되는 틈새를 파고든 영악한 결과인 덕분이란 점에서 그렇다. 또한 인물의 현재가 그들의 어떤 과거의 결핍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결말부에 다다라 일순간 깊은 감정적 여운을 남기는 클라이막스를 연출하기도 하지만 <필립 모리스>는 분명 유쾌하고 활달한 영화다. 어떤 동정심조차도 거부하려는 것처럼 이 영화는 비극적이라 말할 수도 있는 그 결말 너머에서도 유쾌한 감정을 잃지 않는다. 이는 역시 짐 캐리라는 배우로부터 생산된 기질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나 다름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무후무한 사기탈옥극이자 퀴어 로맨스물인 <필립 모리스>는 소재 자체의 가능성이 배우의 특성에 필터처럼 걸러져서 완성된 작품인 셈이다. 물론 <필립 모리스>의 백미는 영화가 끝난 뒤 몇 줄의 자막이 전해주는 진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2010년 7월 1일 목요일 | 글_민용준 beyond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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