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감독이 일을 냈다. 근데 그의 신작 <구하라>는 영화가 아니다. 시트콤이다. 그것도 인디시트콤. 한 에피소드가 5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 장편을 기획 중이던 윤성호 감독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영화화하고 싶었다. 너무나 사소한 이야기인지라 장편영화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감독은 영화보단 시트콤에 어울리다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총 10편으로 구성된 <구하라>는 지상파 TV에서 방영하는 시트콤과는 다르다. 첫번째 에피소드 한 편이 지상파 TV 시트콤 1화가 아니다. 10편이 모두 합쳐져야 1화가 완성된다. 다시 말해 시즌 1. 매 에피소드는 앞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소개하는데 주력한다. 매니저인 재민(황제성)을 중심으로 그의 부모와 형제, 배우들 그리고 이혼한 아내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재민이가 이 시트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만드는 가교역할쯤이라고 해두는 편이 낫다. 그러므로 총 4회차 촬영에 재민 역을 맡은 황제성은 모두 참여했다.
<구하라>의 모태가 되었던 작품은 바로 미국 드라마 <오피스> 시리즈다. 한 직장을 배경으로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직장 상사와 사원들간의 이야기를 특유의 촬영방식으로 잘 보여준작품이다. 24시간 VJ가 그들을 따라가는 것과 같은 카메라 워킹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연상시킨다. 워낙 이 시리즈에 광팬이 윤성호 감독은 흔들리는 화면과 인터뷰 장면을 삽입하며 자신만의 시트콤을 완성했다. 하지만 쪽대본과 빡빡한 스케줄은 감독의 머리를 쥐어짰게 만들었다. 15페이지 쓰고 목요일날 촬영, 그 다음에 15페이지 쓰고 일요일날 촬영했던 빡빡한 스케줄. 윤성호 감독은 TV 드라마 촬영에 버금가는 스케줄에 어려움이 컸다. 혼자 1인 3역을 다 소화해 내려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감독은 소소한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대로 만들어낸 재미에 푹 빠졌다.
<구하라>, 독립영화를 구하라
‘무단 업로드 일단 개시!’ <구하라>의 포스터 홍보문구다. <구하라>는 오로지 인터넷에서만 공개하는 시트콤이다. 극장이 아닌 온라인을 통해 상영하는 방식으로 월요일마다 한 편의 에피소드를 업로드한다. 재미있는 건 누구나 단 한번의 클릭으로 자신의 블로그나 홈피, 트위터로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구하라>의 배급방식이자 관객과의 소통법이다.
작년 12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운영 중단, 올해 1월 미디액트 사건 등 점차 독립영화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게 현실. 이런 상황에서 윤성호 감독의 재기발랄한 시트콤은 독립영화의 새로운 루트라 할 수 있다. <구하라>는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기반하고 있다. SNS는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번거로운 과정 없이 영상을 보고 쉽게 ‘펌’할 수 있고 또한 댓글로 시트콤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표출할 수 있다. <구하라> 이전에도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이 시트콤은 온라인 플랫폼에 맞춰 기획하고 제작된 작품이다. 수 많은 3D 입체영화가 넘쳐나고 있지만 오랜 시간 동안 3D 입체영화 포맷으로 기획하고 준비했던 <아바타>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온라인 플랫폼에 맞춰 제작한 <구하라>는 다른 작품과 시작점부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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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구하라> 시즌 2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윤성호 감독은 지금보다 예산이 증대되면 케이블 TV에 방영하고, 안되면 지금처럼 계속 온라인을 통해 볼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더불어 TV 드라마 형식으로 지상파, 케이블, 온라인 등 다양한 체널에 팔고 싶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를 되기를 원한다. 단순히 <구하라>가 “새로운 루트를 발견했다”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단 칼을 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시리즈를 이어 나갔으면 한다. 이를 통해 한국 독립영화가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윤성호 감독 자택 인터뷰
어떻게 이 시트콤을 기획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야기가 좀 길다.(웃음) 작년 6월부터 올 1월까지 인생을 정리하는 기간이었다.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이별을 겪고, 절친한 친구와 소원해지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또한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마이클 잭슨, 최진영까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람들도 운명을 달리했다. 마치 시대가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막상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이제 그만 까불고 청춘과는 작별을 하라는 말처럼 여겨졌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건 좋은데, 그만큼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다.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친한 사람들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근데 처음에는 같이 슬퍼하고 위로해줬던 사람들이 “여자친구하고 헤어지고, 친한 친구와 서먹해지고, 할머니까지 돌아가시고, 근데 그 여자 결혼한데”라는 푸념을 듣더니 바로 웃더라. 왜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이 상황이 웃기다고 말했다.
이 얘기 완전 시트콤이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시트콤에 나올법한 얘기다. 뭐 이를 테면 “정교빈 죽여버리겠어”라는 대사와 함께 웃음소리를 넣거나, 이별을 통보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이에 고추가루 낀 장면을 삽입하면 바로 드라마에서 시트콤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준비중인 영화 시나리오를 쓰다가 이 이야기를 빨리 만들고 싶었다. 그 때 술 마시며 내 얘기를 잘 들어줬던 <계몽영화>의 박남희 PD에게 부탁했고, 둘이 합심해서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까지 프로젝트에 끌어들였다. 또한 시트콤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은 인디플러그 고영제 PD도 도와줬다. 정말 이번 시트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재민 역에 황제성씨를 캐스팅한 건 의외다. 어떤 점을 보고 캐스팅한 건가?
황제성씨는 다른 개그맨들보다 발성과 발음이 매우 정확하다. 거기에다 개그가 과장 없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여타 개그맨들은 코믹한 순간을 표현하기 전 과장된 추임새를 넣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황제성씨는 그런 추임새 없이 깔끔한 개그 스타일로 관객들을 웃기더라.
쇼케이스때 황제성씨가 첫 연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말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 <구하라>는 짧은 분량의 시트콤이었기 때문에 총 4회차로 마무리 했다. 주인공 격인 재민 역을 맡은 황제성씨는 모든 회차에 출연했다. 아마도 힘들었던 이유가 자신이 개그맨이기 때문에 코믹스러움을 배제하려고 한 탓이 아닐까 생각된다. 실은 그것을 염두해 두고 캐스팅한 건데 말이다.(웃음)
그렇지는 않다. 만약 인디스페이스가 있다 하더라도 그 공간에서 이 작품을 상영하지는 않았을 거다. 지금 현재로도 독립영화를 틀 장소는 많다. 하지만 인디스페이스처럼 꾸준히 독립영화를 상영할 극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당연히 이것에 대한 문제를 집고 넘어가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내야겠지만, 별개로 극장이 아닌 인터넷 상으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창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에 푸른 영상이 4대강의 무분별한 개발을 반대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예전 푸른 영상이었다면 꾸준히 찍고 나중에 편집을 해서 영화제에서 상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의 상황에 맞춰 곧바로 편집해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럼 <구하라>가 현재 독립영화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구하라>로 인해 독립영화의 레시피가 다양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들 독립영화라는 요리를 할 때 단순히 큰 식칼을 써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도도 쓰고 가위도 쓰고 하는 생각의 폭을 넓혔다고 본다. 이 작품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하겠지만 내 자신에게 생각의 변화를 준건 확실하다.
앞으로 시즌 2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가?
이 시리즈는 계속해서 TV 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싶다. 그래서 다양한 체널에 팔고 싶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면 한다. 다음 시즌을 만든다면 출연시키고 싶은 사람이 많다. 진중권, 김용옥 등 공중파 예능이나 시트콤에 출연하지 않는 우리만의 초대손님을 <구하라> 시즌 2에 등장시키고 싶다. 응원받고 싶고, 응원하고 싶은 우리의 초대손님들이 나왔으면 더욱더 재미있을 것 같다.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다작을 하고 싶다. 오늘날 영화감독이 죽을때까지 10편을 만들기가 힘든 시대가 와버렸다. 이제는 감독은 너무 많고, 만들 수 있는 영화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영화 한 편 만들기가 힘들어졌다. 이제 곳곳에서 다양한 성격의 영화보다는 보다 많은 곳에서 상영할 수 있는 영화를 원한다. 예전보다 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는 많아졌지만 그에 따라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제작사나 투자자의 요구를 따른다고 하더라도 영화를 못 만드는 시대다. 지금까지 만든 몇 편의 독립영화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실제 대중에게 영향력이 없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이 대중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구하라>를 만들면서 1억짜리 영화를 하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안 했을 수 도 있는데, 앞에 설명한 이유 때문에 일단 접수 했다. 그리고 아마 다음 작품도 빨리 결정될 것 같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이 좋지만은 않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이 같은 결정은 단순히 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위한 수단에 불구하다. 이런 의미에서 <쇼킹패밀리>를 만든 경순 감독님은 참으로 대단하다. 감독님은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나의 영화에는 그런 숭고한 의미가 없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살아있다는 것을 표출하기 위해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것이다.(한숨) 참 안되 보이지 않나?
그렇지 않다. 하지만 예전 <은하해방전선> 인터뷰 때보다는 많이 힘들어 보인다.
요즘 너무 지친다. 예전엔 유희로 했던 영화를 요즘에는 직업으로 하다 보니까 힘에 부친다. 마치 예전에는 수레를 끌고 다녔는데, 이제는 수레에 밀려 가는 느낌이다.
속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그 느낌을 얼핏 알 것도 같다.
이래서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실감한다.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느낌. 이제는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여러 사람에게 민폐다. 나와 함께 스텝들과 관객들도 같이 나이를 먹었다. 또한 나의 가족 사랑하는 사람도 나이를 먹었다. 다시 말하자면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예전 같으면 그냥 무보수로 해줄 수 있는 일도 서로 나이를 먹다 보니 그럴 수 없게 되더라. 그렇다 보니 만드는 작품도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대로 담기 보다는, 자본주의안에서 돈이 선순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넣고 싶은 개성도 빼고, 비판하고 싶은 것도 두리뭉실하게 가져간다. 이게 문제다.
지금 말하는 걸 들어보니 말로서 표현하기 힘든 심정을 <구하라>로 토로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지금 시트콤에서 재민이 상황이 내 상황과 비슷하다. 극중에서 예전 재민이는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매니저로서 일도 열심히 하고, 가족에게 사랑 받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32살에 와이프와 헤어지고, 별 볼일 없는 배우들의 매니저로 일한다. 힘든 상황이지만 여전히 건사할 사람은 많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배우들도 생각하고, 가족도 생각해야 하고, 헤어진 와이프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해주지는 못한다. 나의 푸념일 수 있는 이 시트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현실은 힘들지만 어떻게 하면 덜 힘들고 유쾌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얻기를 바란다.
2010년 6월 19일 토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0년 6월 19일 토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