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만든 6.2지방선거가 여당의 완패 속에 막을 내렸다. 천안함 사태로 촉발되고 대북관련 사업 중단과 남북관계 악화로 이어진 고전적 방식의 ‘북풍’을 이겨낸 결과였다. 중장년층이 앞장서 투표에 가세했고, 20대의 적극적인 투표참여가 빛을 발했다. 일각에서는 트위터를 따라 급속도로 전파된 투표독려 지지 캠페인에 대해 새로운 정치홍보수단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당은 즉각적이면서도 틀에 박힌 ‘국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말로 애써 패배를 시인했고, 야당 역시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안다. 어차피 며칠 지나면 다 잊어버릴 것이란 사실을.
야당이 좋아서 찍어준 게 아니라는 것을. 이번 선거의 압권은 단연 서울시장이었는데, 승자라고 해서 맘 놓고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니, 서울시민의 불만과 정권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선거는 끝났고 결과에 따른 논공행상이 펼쳐질 테지만 어차피 국민과는 무관한 일일 터. 이겼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요, 졌다고 낙담할 일도 아니다. 역사는 돌고 도니까 말이다. 바라기는 온 국민이 정치에 대해 (여름날 그늘 밑에서 낮잠을 즐기는 강아지만큼이나) 무관심할 수 있도록 알아서 잘 해주었으면. 바랄 걸 바라라고? 아무튼 이놈의 선거란, 두렵기도 하고 영 미덥진 않지만 아쉬울 때 한 번씩 나타나 마음 설레게 하고 떠나는 것이 딱 ‘내 깡패 같은 애인’이다.
박중훈의 신작 <내 깡패 같은 애인>은 박중훈의 배우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삼류 양아치로 시작하여 마초와 로맨티스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지점을 유연하게 넘어 비장미 넘치는 듯 보이지만, 결국 피식 웃게 만들면서 마무리되는 이 영화에서, 박중훈의 전작들, 즉 <깜보>와 <게임의 규칙> <똑바로 살아라>를 비롯해 무수한 영화가 오버랩 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제껏 박중훈을 ‘연기파 배우’로 칭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어쩌면 90년대 중후반 그저 그런 코미디물에 무차별로 출연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단지 그런 이유로 그의 연기를 과소평가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박중훈이 맡았던 캐릭터 하나하나가 오직 그였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배우를 상상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지나치게 과소평가된 배우로 박중훈을 꼽곤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이지 핸드폰을 들고는 “나 지금 걸으면서 전화하고 있어”라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너스레를 떨어대지만 세차소년에게 칼 맞고 꿈을 접어야하는 삼류 깡패 용대를, 한 손에는 애인의 선물을 쥐고 다른 한편으로 마누라를 죽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심한 박봉수를,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강력반 형사 영구를, 투박하고 유치찬란한 수법으로 유부녀를 탐하는 소심하고 비루한 변두리 재단사 배일도를, 박중훈이 아닌 누가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이제는 불혹의 나이를 넘겨 주름 가득한 얼굴이지만, 변함없는 능청스러움에 세월의 연륜이 붙은 그의 모습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의미를 지닌다. 흥미롭게도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최고에 올라간 예가 드물다. 맞고는 못 살지만 결국 제대로 때려눕히지도 못하는 인물들. 밉기보다는 안타깝고 그래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그의 연기를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조막만한 얼굴과 초콜릿 복근대신 자신이 걸어온 한국영화의 한 시대를 갑옷삼아 폼 나진 않아도 제 몫을 다 해내는 배우, 이죽거리는 입가에 멋쩍은 웃음이 배어나오는 그 순간이 멋진 배우가 박중훈이다. 그런 그가 가쁜 숨으로 달려와 찍은 인장 같은 영화가 <내 깡패 같은 애인>이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그 속에 삶과 사랑을 지배하는 시대의 불편한 공기가 스며있어 믿음직스럽고, 의미 없는 코미디가 아니라서 흐뭇하다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