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이 1990년대 잘 나가던 그만의 스타일로 돌아왔다. 장르는 당연히 코미디. 과거의 코미디라는 얘기에 촌스럽지 않겠나 싶을 수도 있지만, 웬걸? 이거 은근히 재미있다. 상황도 그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정도고, 캐릭터들도 그다지 독특한 편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균형을 이룬다. 비록 제목이 살짝 ‘싼티’가 나기도 하지만, 영화에 대한 이미지와 느낌을 한 번에 전하는 역할로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세진(정유미)은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다. 헌데 첫 직장은 부도가 나고, 그 이후에는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력서조차 받아주지 않는다.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된 세진은 반지하로 집을 옮기는데, 이런! 옆집에 깡패가 산다. 깡패인 동철(박중훈)은 이제 퇴물이 됐다. 깡패는 ‘가오’라며 폼 나는 인생을 살겠다고 하지만 사고만 치고, 맞고 다니기까지 한다. 근데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여자까지 자기를 만만하게 본다. 볼 때마다 티격태격 싸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묘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마음을 터놓게 된다. 상극일 것 같았던 두 사람은 결국 조금씩 친해진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전형적인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다.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은 사회 초년생 여자와 퇴물 깡패가 서로 반지하 옆집에서 살면서 아옹다옹 이야기를 펼친다. 처음에는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나중에는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로맨스에 이르는 구조다. 1930~40년대 할리우드에서 유행했던 전형적인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 깡패 같은 애인>은 한국의 조폭 캐릭터들과 엮여, 보다 친밀하게 표현됐다. 그리고 여기엔 한국 코미디를 대표했던 배우, 박중훈이 있다.
영화는 박중훈의 비중이 매우 높다. 이야기 자체는 박중훈과 정유미의 에피소드로 양분돼 전개되지만, 영화의 전체 이미지를 좌우하는 것은 박중훈의 영향력이다. TV 드라마 출연 없이 오로지 영화만 고집했던 박중훈은 2000년대를 지나면서 그 기세가 한풀 꺾이기도 했다. 색다른 캐릭터를 맡거나 할리우드에 진출도 했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그의 코미디를 보고 싶어 했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은 박중훈의 장점을 잘 살린 작품이다. 우격다짐으로 억지 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반전 상황들에 위트 있는 대사들을 섞여 박중훈의 잘나가던 코미디 배우 시절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큰 웃음을 준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큰 미덕은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코드들이다. 계속 취업에 실패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 세진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고 있어 공감을 이끌어내고, 잘나가던 시절만 생각하는 퇴물 깡패 동철은 과거 한국영화의 흥행을 이끌었던 조폭영화 캐릭터들의 현재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면서 캐릭터 자체의 색깔도 변했다. 이제 더 이상 욕하고 때리고 맞는 코미디는 하지 않는다. 생활밀착형 캐릭터이기에 사소한 일상 속에서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유도해낸다.
연출을 맡은 김광식 감독은 <오아시스>의 조감독 출신이다. 물론 이번 영화가 <오아시스>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지만, 웰 메이드 영화의 현장 경험은 장르와 스타일이 다른 영화에서도 자신의 역할이 뭔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영화를 가볍게 하지 않는 연출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캐릭터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하지만 감동을 만들어내려는 후반부와 모두가 잘 된다는 식의 방만한 엔딩은 다소 손발이 오글거린다. 대중영화라고 해서 늘 끝에 모두가 잘되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는 안 된다. 관객들 역시 마지막보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을 중요시 한다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2010년 5월 17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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