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춘천은 낭만의 도시’라는 말은 또 어떤 팔자 좋은 분께서 했던가. 사랑이 숨쉬고, 낭만이 넘실거리는 춘천은 이 영화 <뭘 또 그렇게까지>엔 없다. ‘나쁜 충동’의 기류가 충만한 춘천이 있을 뿐이다. <뭘 또 그렇게까지>는 서울, 인천, 춘천, 부산, 제주 등 한국의 다섯 도시를 소재로 하여 제작된 프로젝트 ‘영화, 한국을 만나다’ 중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오는 작품이다. 독특한 뮤지컬 영화 <삼거리 극장>으로 주목받은 전계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슬럼프에 빠져 있는 화가 찬우(이동규)는 세미나 참석을 위해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지루한 세미나가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던 찬우는 김유정역에서 충동적으로 내리고, 그곳에서 “선생님 팬이었다”며 살갑게 구는 미술 전공 대학원생 김유정(주민하)을 만난다. 자신의 앞날에 고민이 많은 유정은 “선생님을 하루 모실 기회를 달라”며 찬우에게 춘천 안내를 제안하고, 찬우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은 계획에 없던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러는 사이, 찬우는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표하는 유정에게 이성적인 충동을 느낀다.
제목에서부터 홍상수스러움이 물씬 풍겨나는 영화는 내용에서도 홍상수스러움을 군데군데 드러낸다. 유정 앞에서 “인생이 어쩌구 저쩌구~”, “니체의 사상이 어쩌네 저쩌네” 장황한 허세를 떨던 찬우는, 그녀와 하룻밤 보내고 싶은 욕구를 이기지 못해 일순간 비굴해진다. 그런 찬우의 마음을 이용해 잇속을 챙기려는 영악한 유정 역시 순수한 인간은 못 된다. 교단에서는 고고한 척 하고, 술자리에서는 서로에서 삿대질 해대는 명망 높은 교수님들의 모습은 또 어떤가. 영락없이 홍상수가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들이다.
하지만 <뭘 또 그렇게까지>의 시선은 홍상수 영화들에 비해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친근하고, 보다 따뜻하다. 홍상수의 영화가 속물근성 가득 찬 인물을 망신당할 정도로 까발려낸다면, 이 영화는 그러한 인물들에게 제법 여유로운 시선을 보낸다. ‘잠시의 충동이었을 뿐’이라고 달래기도 하고, 위트 있는 상황을 통해 어르기도 한다. 급기야 해피엔딩을 통해 자존심에 금이 간 그들의 마음을 봉합까지 시켜준다. “뭘 또 그렇게까지…”라는 제목처럼 심각할 필요도,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영화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흐른다. <뭘 또 그렇게까지>가 홍상수의 아류작이 아니라, 나름의 패러디로 읽히는 것도 그만의 개성을 놓치지 않은 이러한 시선 덕이다.
‘영화, 한국을 만나다’라는 지역색을 지닌 프로젝트 영화지만, 그것에 함몰되지 않은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서울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서울 홍보 영화가 되고 말았다’는 첫 번째 작품 <서울>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영화는 춘천이라는 배경을 이야기 앞에 내세우지 않는다. 김유정 문학촌, 청평사, 춘천호 등의 자연풍광을 인물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뿐이다. 이미지가 인물들의 여정에 힘을 싣는 요소로 적절하게 사용된 좋은 예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성과는 저예산 영화들, 더 정확히 말하면 돈 없는 영화 학도들과 감독들에게 희망이 될 만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전계수 감독은 촬영비 절감을 위해 사진 촬영이 주 기능인 캐논 DSLR 카메라로 모든 씬을 촬영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혹은 생각했어도 시도하지 않았던 작업이다. 장편영화가 DSLR 카메라로 촬영된 건, <뭘 또 그렇게까지>가 최초다.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 글_ 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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