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연못>이 시작 8년 만에 드디어 개봉한다. 기획 단계부터 치자면 거의 10년 세월을 지나 관객과 만나는 것이니 실로 꿈같은 일이라 하겠다. 한국전쟁 초기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다리 아래서, 자행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이 영화에는, 142명의 배우와 229명 스태프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완성하고도 또 몇 해를 기다린 끝에 2009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고, 오는 4월 15일 개봉하게 된 것이다.
영화의 연출은 극단 ‘차이무’의 이상우 선생이 맡았는데, 차이무(次移舞)하면 고인이 된 박광정의 <비언소>를 필두로 <늘근도둑 이야기> <거기> <평화 씨!> <돼지사냥> 등 공전의 히트레퍼토리를 가진 대학로의 내로라하는 인기극단 중 하나다. 이렇다보니 출연배우 역시 차이무 출신이 총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광정을 위시해 이대연, 김뢰하, 박원상, 최덕문, 이성민, 민복기, 박지아, 전혜진 등. 여기에 문성근과 송강호와 문소리, 정석용까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이 들 정도다.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최덕문은 말하길 “<작은 연못>의 출연은 차이무 배우들에게는 ‘징집’이었다”고 한다. 또 그는 “워낙 많은 배우들이 나오니까, 이상우 선생님은 캐릭터 이름을 칠판에다가 쭉 적으시고는 윤 씨네, 최 씨네 식으로 가족들 단위구성을 다 만든 다음에, 문 씨네는 문성근, 최 씨네는 최용민이라면서 다 정해놓고는, 와라! 하면서 징집하셨다.”고도 했다. 이렇게 모든 배우들이 징집 당했고 노 개런티였지만,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촬영한 까닭은, 영화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배우 스스로가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작은 연못>은 내용과 완성도를 떠나, 제작과 배급방식에 있어 한국영화사에 신기원을 이룩한 영화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러니까, 질곡의 역사를 성찰하는 영화를, 그러나 자칫 이데올로기에의 뭇매를 맞을지도 모를 민감한 내용의 작품에 노 개런티로 참여한 배우들의 용기, 즉 충무로와 대학로와 드라마에서 활동하는 선후배들이 누구하나 군소리 하지 않고 참여한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싫은 내색 없이 촬영에 임했고, 시간이 되지 않으면 단 하루라도, 피난민으로라도 등장해서 촬영을 하고 갔다. 송강호와 문소리도 이런 식으로 제 몫을 다했다. 또한 비록 지난 정부에서 노근리 사건에 대한 공식 인정과 사과가 있었다고는 하나, 워낙 첨예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다가 시절이 하수상하다 보니, 선뜻 배급과 홍보를 맡아 뛰어줄 만한 곳을 찾기 쉽지 않았을 터. 그래서 탄생한 것이 ‘자발적 필름구매 캠페인’이었다. 1인 1만원의 필름구매비용 기탁을 통해 배급에 힘을 보태자는 것. 그렇게 시작된 캠페인은 3,734명의 관객참여를 끌어냈다. 이렇듯 힘겨운 산통 끝에 만들어지고 관객과 만나는 영화가 <작은 연못>이다.
그렇다고 8년이란 시간과 배우의 노 개런티 출연이 영화의 품질저하로 이어지지 않았을까하는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기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프닝 종반 부감 숏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장면ㅡ조금 더 공간을 확장시키고 몇 초 더 썼더라면 굉장하지 않았을까ㅡ에 이어 단숨에 거의 모든 캐릭터를 소개하는 연극적 무대이동기법을 거친 후 맞닥뜨리는 철길 위의 살육 신에 이르면, 그 리얼함에 혀를 내두를 게 분명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조금씩 밀려올라오다, 쌍굴을 향한 무차별 난사 신에서 기어이 터지는 눈물과 분노가 뒤엉킨 먹먹함을 느낀 후에, 비로소 영화를 평가해도 늦지 않을 일이다.
굴절의 역사를 그리고 있음에도 이상우의 노련한 연출은 당시 노근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함은 물론이고, 이 힘든 영화를 끝까지 지켜본 관객의 마음까지 어루만진다. 요컨대 <작은 연못>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민간인임을 알려주고 60년 전 끔찍한 사건을 고발하는 영화인 동시에, 시대의 아픔을 감동과 웃음으로 넘어서며 ‘애잔한 미소로 아픈 과거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영화’다. 그러므로 김민기의 ‘천리길’이 아이들의 청아한 목소리로 울려 퍼질 때 흐르는 눈물을 부끄러워 말기를. 대문바위골 주민들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순간의 가슴 벅찬 느낌을 맛보시기를. 이번 주는 열일 제쳐두고 <작은 연못>과 만나시기를.
2010년 4월 16일 금요일 |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