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어디 쉽던가.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게 사람의 인생이다. 근데 말은 참 쉬운데 이걸 영화로 만들어 표현한다면 그리 쉽지는 않은 작업이 될 거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어떤 사람의 일상 자체를 찍어 댈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코엔 형제는 인생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굉장히 사적이면서도 공감가게 풀어냈다. 어차피 인생이란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 코엔 형제는 특별한 사건을 그리기보다는 다양하게 벌어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모두 보여준다.
대학 교수인 유태인 래리(마이클 스터버그)는 최근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아내(사리 레닉)는 래리의 친구와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며 이혼을 요구하고, 아들은 학교에서 말썽만 피우고 집에서는 TV 안테나를 만져 달라는 소리뿐이다. 딸은 성형을 하겠다며 아빠의 지갑에 손을 대고, 남동생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기행만 저지른다. 이런 와중에 학교에서 한 학생이 자신의 점수가 왜 F냐며 수정을 요구하다 급기야 돈 봉투까지 놓고 가고, 이로 인해 정교수 채용 문제에서 곤란을 겪게 된다. 자꾸 꼬여만 가는 일상. 도무지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래리는 인생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가장 위대 랍비를 찾아간다.
<시리어스맨>은 유태인과 유태인의 문화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주인공 래리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유태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한 인물이다. 이혼문제, 자녀문제, 학교에서의 곤란한 일 등 하루가 편할 날이 없는 래리는 자신의 힘겨운 삶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가장 위대한 3명의 랍비를 찾아간다. 하지만 복잡하고 실질적인 자신의 고민에 대해 원론적이고 고지식한 대답만 하는 랍비. 명쾌한 대답을 기대했던 래리는 다시 심각해지지만, 그들의 얘기가 틀린 것도 아니다. 일상의 복잡다단한 일들에 어떤 명쾌한 해답이 있을 수 있겠나? 설사 있더라도 그건 그렇게 엄청난 대답은 아닐 거다.
영화는 래리라는 인물의 아주 사적인 삶을 유태인의 정서와 생활 방식을 통해 풀어낸다. 친숙하지 않은 그들의 문화가 미국 관객이 느끼는 것만큼 우리에게 전해지지는 않지만, 진지한 통찰과 일상의 코미디를 오가는 가장 래리의 모습을 통해 코엔 형제의 블랙 코미디를 만끽할 수 있다. 문화 자체를 이해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겪는 다양한 일들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부인과의 문제, 아이들과의 문제, 남동생을 통한 가족의 문제 등 묵묵히 지고 가야 할 업보들이 심각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그나마 TV 안테나를 고치러 올라갔다가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옆집 여자를 보는 것이 잠시의 일탈이랄까? 그만큼 래리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이번 영화에서도 코엔 형제의 은근한 유머가 빛을 발한다.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인생을 압박하다가도 다시 인생 뭐 있냐는 식으로 달관하는 자세를 취한다. 아들의 경우, 친구에게 줄 마리화나 대금이 든 라디오를 선생님한테 뺏기고 매일 친구를 피해 도망 다니듯 학교를 다닌다. 하지만 돈을 돌려받고 친구에게 마리화나 값을 주려는 순간 학교를 향해 거대한 태풍이 다가온다. 그깟 돈이 무슨 소용이냐는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친구. 인생이 그런 거 아니겠나. 사소한 일에 아등바등하지만 결국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너무나도 사적이지만, 동시에 모두가 공감할 만한 삶을 보여준 데에는 래리를 연기한 마이클 스터버그의 공이 크다. 그는 토니상을 수상할 정도로 뉴욕 연극계에서는 유명한 인물이지만, 코엔 영화에서 주연을 맡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코엔 역시 그에게 작은 에피소드 하나를 맡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본 리딩 때, 마이클 스터버그는 일상을 살아가는 고달픈 가장의 모습을 너무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주인공으로 위치가 바뀌었다. 또 1960년대 미국 중서부 지역의 유태인 문화를 완벽히 재현한 프로덕션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고, 음악과 패션 스타일, 일상 소품들 역시 시대적인 표현과 함께 코엔 형제 특유의 스타일을 잘 드러낸다.
<시리어스맨>은 너무 심각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심각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라도 인생에 대해 쉽게 정의를 내리긴 어렵다. 신에 버금가는 위대한 랍비라도 누군가의 인생에 명확한 해답을 줄 수는 없다. 그들의 얘기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서 답이 될 수도, 다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탈무드’의 코엔 형제식 해석과 현대 사회에 대한 적절한 적용은 <시리어스맨>에 담긴 다양한 에피소드를 풀어가는 또 다른 재미다.
2010년 3월 23일 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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