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츠카 오사무의 손에서 이마지 스튜디오의 손으로
아톰은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츠카 오사무의 손에서 탄생했다. 아톰은 1951년, 일본의 소년지에 연재되던 ‘아톰대사’라는 원작 만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인기에 힘입어 1963년, <철완 아톰>이란 제목으로 총 193편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후 1982년, 흑백이 아닌 컬러 애니메이션으로 52편을 방송했고, 평균 3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아톰은 2003년에 디지털로 복원되어 총 50편이 방영됐다. 전세계적으로 사랑 받은 아톰은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우주소년 아톰>이란 제목으로 처음 소개됐고, 영미권에서는 <아스트로 보이(Astroboy)>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데츠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은 <피노키오>의 스토리와 흡사하다. 실제 데츠카 오사무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피노키오>는 그가 눈 여겨 본 작품이었다.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는 아톰의 운명은 나무 인형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피노키오의 운명과 일치한다. 이를 통해 데츠카 오사무는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는 아톰으로 하여금 휴머니즘을 전했다.
CG 애니메이션으로 탈바꿈한 <아스트로 보이>는 2007년, 워너 브라더스와 함께 CG 애니메이션 <닌자 거북이 TMNT>를 만든 홍콩의 이마지(IMAGI) 스튜디오가 제작을 맡았다. 이마지 스튜디오는 거대 애니메이션 제작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소규모 신생 스튜디오다. 하지만 시간과 인력의 부족, 감독 교체 등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18개월 동안 홍콩과 LA를 오가며 아톰 프로젝트를 현실화 했다.
<아스트로 보이>는 쥐를 주인공으로 지하세계의 모험을 그렸던 <플러쉬>의 데이빗 보워스가 연출을 맡았다. 데이빗 보워스는 아톰을 오늘날 애니메이션의 흐름에 발맞춰 셀 애니메이션이 아닌 CG 애니메이션으로 탈바꿈 시켰다. 이로 인해 영화 속 아스트로가 비행하는 장면이나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 등의 영상은 원작보다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감독은 원작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이번 영화에서 데츠카 오사무가 아톰을 통해 전하려 했던 사랑, 우정등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를 변함없이 담으려고 노력했다.
귀여운 아톰에서 세련된 아스트로 보이로
60년이란 세월의 터울로 인해 아톰과 아스트로는 차이점을 갖는다. 먼저 아톰은 시대적 상황에 발맞춰 그 당시 최고의 에너지원으로 여겼던 핵융합을 에너지원으로 하고 있다. 반면 아스트로는 우리에게 코주부 박사로 알려져 있는 엘펀 박사가 외계에서 수집한 광물의 힘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아톰은 10만 마력, 마하 5로 하늘을 날고, 인간의 1,000배에 이르는 청력, 60개 외국어를 말할 수 있고, 엉덩이에 머신건이 장착되어 있으며, 사물을 투시하는 눈, 그리고 선악을 구별하는 7가지 능력이 있다. 아스트로도 레이저 빔을 발사하는 손가락을 제외하면 아톰의 능력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원작에서 아톰을 만든 텐머 박사는 죽은 아들의 빈자리를 로봇으로 채우지 못한 절망에 빠져 서커스단에 팔아 넘긴다. 아스트로도 텐머 박사에게 버림 받지만 서커스단이 아닌 지상의 로봇 쓰레기장으로 떨어진다. (<아스트로 보이>의 주 배경지인 메트로 시티는 지상이 아닌 하늘에 떠 있는 도시다.) 각자 그곳에서 친구들을 사귀며 인간다운 삶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은 두 캐릭터 모두 같다.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셀 애니메이션과 CG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되는 영상에 있다. 아톰은 기존 셀 애니메이션을 사용해 귀엽고 친근한 캐릭터로 다가왔다. 하지만 CG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재탄생한 아스트로는 원작 캐릭터의 장점을 고스란히 가져온 동시에 오늘날에 맞게 모습을 바꿔야 했다. 아톰보다는 연령을 좀 더 높이고, 검은 팬츠와 빨간 장화를 과감히 탈피, 90분 내내 옷을 입은 채 등장한다. 또한 트레이드 마크인 삐죽 나온 머리를 3차원으로 표현하기 위해 수없이 카메라 각도를 수정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엉덩이 총과 로케트 발, 그리고 팔의 소총 등 모든 것을 CG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다행이도 테츠카 오사무의 아들 테츠카 마코토가 캐릭터 시안 과정에서 직접 조언을 해줬다. 이로인해 <아스트로 보이>는 최대한 원작의 느낌을 살리면서 새로운 영상 표현의 적절한 조합을 이루었다.
휴머니즘보다는 볼거리 중시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철완 아톰>은 귀여운 캐릭터, 거대 로봇과의 대결을 보여주는 동시에 휴머니즘을 전한다. 데츠카 오사무는 아톰을 통해 점점 잃어가는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가 중요시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보여주었다. 또한 아톰이 인간보다 더 따뜻한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설정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교훈을 주었다. 더 나아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고 냉대하는 사회를 고쳐나가자는 의미도 전달했다. 이렇듯 원작은 아톰을 내세워 좀 더 교훈적인 메시지와 철학적인 가르침을 설파한다.
이에 반해 <아스트로 보이>는 CG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한 아스트로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더불어 로봇과의 액션장면이 큰 비중을 차지 한다. <철완 아톰>은 셀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영상을 선보였지만 좀 더 스팩터클한 장면을 구현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스트로 보이>는 이를 보완하고자 CG 애니메이션을 사용하며 액션 장면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스톤 총리의 군대와의 벌이는 추격전은 물론, 원형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로봇들과의 결투와 마지막 전쟁 로봇 ‘피스 키퍼’와의 대결은 빠른 속도감으로 원작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특히 아스트로의 빠른 속도감을 보여주기 위해 무려 1,685샷으로 구성된 영화의 총 장면은 이를 증명한다.
지난 2009년 10월, <아스트로 보이>는 북미와 일본에서 먼저 개봉됐다. 50년 만에 CG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오는 소년 로봇에 쏠렸던 많은 기대와는 달리 저조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소년 영웅을 만나게 하려 했던 제작진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아톰에 대한 사랑과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제작진이 원작의 맛을 살리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아톰을 사랑하는 팬들의 애정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처럼 아톰이 그리워 진다.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