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개봉했다. 여름부터 개봉 소식이 들렸던 <아바타>가 겨울로 개봉을 미루더니 다행히 해를 넘기지 않고 관객과 만났다. 12년 만에 내놓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 3D 입체영화의 신기원이 될 것이라는 점, 4년 간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 부었다는 점,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압도적인 CG를 보여줄 것이라는 점 등 많은 소식이 개봉 전부터 <아바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리고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냈다. 과연 명불허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많았다.
가까운 미래, 지구는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의 자원을 채굴하기로 한다. 하지만 판도라에는 3m의 키에 뾰쪽한 귀와 파란 피부를 지닌 토착 원주민 나비족이 살고 있다. 처음에는 나비족과의 공조 체제에서 판도라 행성의 자원을 채굴할 생각이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자 나비족을 몰살하고 자원을 독차지하기로 결정한다. 판도라 프로젝트에 참여한 제이크(샘 워딩튼)는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나비족의 일원이 되어 그들과 함께 생활한다. 신임을 얻은 후에 자원을 나눌 의도였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잔인하게 나비족을 학살하는 인간의 행동에 분노한다. 족장의 딸인 네이티리(조 샐다나)와의 사랑, 나비족의 운명, 판도라 행성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인간에 맞서기로 하는 제이크. 활과 화살로 전함에 맞서는 싸움이지만, 제이크는 선두에 선다.
제임스 카메론이 12년 만에 신작을 내놨다. 제목은 <아바타>. 우리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할 때 우리를 대신하는, 바로 그 아바타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처럼,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는 접속 프로그램을 통해 나비족 아바타로 새로운 삶을 얻는다. 하지만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이분법이 아닌, 자신과 아바타의 모습 모두를 같은 현실 세계에 놓고 있다는 점이 기존의 가상현실을 다루는 영화들과는 방향이 다르다. 접속을 해야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식 세계관이 아닌, 현실과 또 다른 현실 모두가 배경이 되기 때문에 인간과 나비, 각각의 입장에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다. 명령 불복종, 같은 종족의 배신과 같은 말로 설명될 수 없는 더 큰 가치가 객관적으로 그려진다.
<아바타>의 가장 큰 장점은 압도적인 비주얼이다. <트랜스포머> 이후, CG로 만들어내는 비주얼은 그 끝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아바타>는 한 차원 높은 비주얼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특히 350페이지에 달하는 ‘판도라피디아’라는 책을 만들어 그것을 바탕으로 디테일을 완성한 행성 판도라는 영화의 가장 근본이 되는 비주얼로, 실제 존재하는 행성처럼 현실감이 넘친다.
영화의 큰 배경인 판도라 행성에는 300m 높이의 울창한 우림과 하늘에 떠있는 산, 나비족을 지켜주는 영적인 힘을 지닌 나무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광활한 자연 경관은 지구에서 볼 수 없는 것이기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런 신비로움을 대상으로 한 인간의 무차별적 폭격 장면도 압권이다. CG가 아닌 실제 영상이라고 믿겨질 만큼 장대한 영상을 만들어낸다. 이는 CG로 만들어진 피사체와 배경은 물론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덕분인데, 바로 이모션 퍼포먼스 캡처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가능했다. 기존의 퍼포먼스 캡처는 단순히 움직임을 잡아 CG로 표현했지만, 이모션 퍼포먼스 캡처는 초소형 카메라로 배우들의 눈동자의 움직임은 물론 작은 표정과 느낌까지 잡아내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궁극의 CG는 물론, 3D 입체영상으로 제작돼 직접 경험하는 듯한 생생한 영상도 강점이다. 특히 판도라 행성에서 벌어지는 액션의 경우, 낭떠러지에 매달리고, 위로 뛰어 오르는 등 수직적인 움직임이 많고, 이크란(익룡 형태의 탈 것)으로 공중을 누비는 장면 등에서도 3D의 효과가 두드러진다. 또한 나비족에게 폭탄을 퍼붓는 전투 장면에서는 폭탄을 비롯 여러 파편들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긴박감을 더 한다. 비록 기존의 3D 입체영화들에 비해 적극적으로 3D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판도라 행성의 심도 깊은 대자연에 입체적인 느낌을 부여한 것이 <아바타> 3D 입체영상의 특징이다. 의도적으로 3D 입체영상을 만들지 않아 오랜 시간 입체안경을 쓰고 영화를 봐도 눈의 피로도가 매우 낮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아바타>의 시나리오는 2주 만에 뚝딱 완성됐다. 하지만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바로 제작에 들어가지 못하다가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보고 확신을 얻었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는 순수 제작 기간만 4년이 걸렸고, 배우들의 표정까지 담아내는 초소형 카메라를 포함해 세트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총 250대, 판도라 행성의 자연을 구현한 CG가 무려 1페타바이트(1,000 테라바이트), 후반작업에 사용된 컴퓨터가 7,500대, 총 30,000개의 프로세서가 사용됐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 <아바타>의 주제의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화려한 비주얼을 담고 있지만 과거 <늑대와 춤을>이나 <포카혼타스> 등이 보여줬던 세계관을 답습하고 있다. 서부개척시대에 원주민을 학살했던 잔혹한 백인이나 여전히 힘없는 인종이나 나라를 무력으로 지배하려는 강대국의 전쟁 야욕이 그것이다. 여기에 자연과 환경을 무차별하게 파괴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측면도 강조하며 마치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근본적이고 얄팍한 의식만을 담아냈다.
하지만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특별한 주제의식보다는 항상 어느 시대의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보편적이다. 특정한 타깃을 잡기보다는 모두가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로 대중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영화가 성공을 거두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바타>는 확고한 주제의식보다는 높은 기술을 바탕으로 한 비주얼에 비중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엄청난 비주얼에 압도당한 관객은 주제를 따지기 이전에 이미 영화에 매료되고 말테니 말이다.
<아바타>는 확실히 모두가 기다려온 기대작다운 값을 한다. 놀라운 비주얼은 시종일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3D 입체영상으로 구현된 화면은 영화 속의 모든 공간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사랑과 인류애, 자연과의 공존, 이타적인 타협, 전쟁지양 등 흔하디흔한 주제를 영화의 근간으로 삼은 것에는 다소 힘이 빠진다. 모두가 공감할 대표적인 가치들을 다루는 영화의 성격상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기술적인 혁신과 완성도에 무게를 두는 제임스 카메론의 스타일이라는 차원에서도 지당하다 할 수 있겠다.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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