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데이즈>의 작가로 주가를 높였던 윤재구가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시크릿>이 개봉한다. 원래 윤재구 작가는 세이빙(saving)이라는 주제로 4부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시크릿>은 그 두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딸을 구하고(<세븐 데이즈>), 아내를 구한(<시크릿>) 이후, 호러와 스릴러를 섞어 친구를 구하는 이야기와 SF와 결합된 마지막 이야기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악명 높은 조직의 2인자가 참혹하게 살해된 현장. 조사를 하던 형사 성열(차승원)은 유리잔에 뭍은 립스틱, 떨어진 단추와 귀걸이 등으로 이 사건이 아내 지연(송윤아)과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동료인 최형사(박원상)가 범인에 다가설수록 성열은 범인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자신의 동생이 무참하게 살해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조직의 보스(류승룡)는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잡기 위해 움직인다. 여러 정황상 자신의 아내가 범인으로 몰린 상황에서 성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내를 지켜낸다. 하지만 조직의 2인자와 아내의 관계에 의문이 생긴다. 용의자와 관계자들을 통해 조금씩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 성열은 마침내 아내 지연의 진실도 알게 된다.
<시크릿>은 스릴러의 전형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의문의 살인 사건, 조금씩 드러나는 증거와 아내와의 관계, 아내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없애려는 형사,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밝혀지는 또 다른 사건과 비밀을 간직한 인물들의 등장이 이야기 전체를 풍성하게 한다. 사건이 조금씩 진전되면서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고, 인물들의 인과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접근 방식도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건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조금씩 흘려주는 단서를 짜맞추면서 이야기의 후반부로 진입하는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틀에 비해 아쉬운 부분도 있다. 우선 사건 전체를 조율하는 비밀스러운 설계자의 존재는 ‘카이저 소제’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답습이며, 여러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던 사건 역시 일순간 한 인물의 친절한 사건 정리로 일단락되고 만다. 살인 사건으로 시작됐던 이야기는 진범을 밝히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다른 사건을 끌어와 방향 자체를 다른 곳으로 틀어버리고, 각자의 패를 숨기고 있던 인물들은 조금씩 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막판에 한꺼번에 패를 던져버리고 만다. 게다가 덧글처럼 붙어버린, 아무도 관심 없는, 에필로그는 넣지 말았어야 했다.
배우들의 모습도 스릴러의 전체적인 틀에 갇혀 있다. 특히 조직의 보스 재칼 역을 맡은 류승룡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너무나도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보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의 등장은 전혀 위협적이지도 않고, 긴장을 증폭시키지도 않는다. 그의 존재와 행동이 후반부 영화의 방향을 바꾸는데도 말이다. 성열 역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사건과 작위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아내 지연과 진실을 은폐한 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던 성열은 결국 영화가 마무리를 짓어야 할 시점에 와서야 비로소 손쉽게 거리를 좁힌다. 비밀을 간직한 지연 역시 사건을 미궁으로 빠져들게 하기 위한 의도된 캐릭터로 현실감이 없다. 재미있는 부분은 범인을 잡으려는 조직의 보스와 은폐하려는 형사의 아이러니한 관계뿐이다.
스릴러를 구성하고 조율하고 그 흐름을 진전시키는 데에 윤재구 작가는 분명 실력이 있다. 하지만 너무 방만하게 벌여놓은 이야기를 적절한 포인트로 모으는 연출에는 안타까움을 남겼다. 부족한 집중력을 만회하는 것은 기술적인 도움이다. 속도감 있는 편집과 미드식 화면, 긴장감을 높이는 사운드는 조력자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낸다. 특히 수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성된 커트의 배열과 화면 구성은 <시크릿>의 두드러진 장점이다. <추격자>의 촬영을 맡았던 이성재 촬영감독은 스타일리시한 장면들을 통해 <시크릿>의 비밀스러움과 혼돈을 적절히 표현해냈다.
<시크릿>은 아쉬움이 남는 스릴러다. 영화에서 이야기의 중요성은 두말 할 것도 없고, 특히 스릴러라는 장르의 경우는 그 영향력이 더욱 크다. 하지만 이야기를 적은 시나리오만으로는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까지 가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븐 데이즈>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가’ 윤재구는 <시크릿>을 통해 ‘연출’로 영역을 확대했으나 그 결과는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비슷한 스타일을 답습하는 것으로 ‘세이빙 4부작’을 진행한다면 반복 재생산에 그치고 말뿐이다.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 능력만으로 영화가 완성되는 건 아니니까.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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