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서 영혼으로>? 제목만 보면 어디서 들어본 듯 괜히 낯익다.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지상에서 영원으로>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 영화는 공포가 은근히 섞인 로맨스다. 게다가 제작된 지도 2년이 지난 영화다. 여명 때문에 개봉했을 리도 없고, 판빙빙 때문인가? 할로윈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겨울에 공포영화가 개봉된다는 것은 살짝 어색하긴 하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시즌에 맞춰 개봉하는 공포영화는 아니었다.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귀신이라는 소재가 살짝 더해졌을 뿐이다.
1930년대 상하이. 중국의 라디오 방송국 오스본에는 미모의 DJ 만리(판빙빙)가 라디오를 통해 사연을 소개하는 ‘심중유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만리에게는 준추(여명)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만리의 프로그램을 통해 청혼을 해, 만리를 놀라게 한다. 기쁨에 준추를 향해 가던 만리. 하지만 만리는 준추의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즉사하고 만다. 만리를 잃은 준추는 그녀의 모든 물건들을 자신의 다락방으로 옮겨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이를 보다 못한 준추의 어머니는 준추를 짝사랑하는 산산(유약영)과 억지 결혼을 시킨다. 하지만 여전히 만리를 잊지 못하는 준추. 그러던 어느 날, 만리의 혼귀가 산산에게 나타나 몸을 빌려 달라고 한다. 만리의 혼을 받아들여서라도 준추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산산은 결국 만리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사랑에서 영혼으로>는 죽어서도 떠날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가슴 절절한 사랑보다는 갖지 못한 사랑에 대한 집착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만리의 죽음 이후, 모든 물건을 가져 온 준추. 하지만 그 물건에는 귀신이 씌어 있었고, 준추의 집으로 온 만리는 산산을 괴롭히고, 준추를 억지 결혼시킨 준추의 어머니에게도 해코지를 한다. 하지만 산산은 만리의 힘을 빌어서라도 사랑 없이 결혼한 준추와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싶어 한다. 준추를 놓고 벌이는 살아있는 산산과 죽은 만리의 치열한 후반기 대결구도는 일순간 로맨스를 심령 공포영화로 바꿔 놓는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무서움을 주거나 깜짝 놀라게 할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 귀신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장면 구성은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다. 갑자기 파란 조명을 받은 귀신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거나 쾅쾅! 하는 강한 임팩트의 사운드가 관객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귀신 등장 장면에서는 서늘한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연출되고, 어둠 속이나 프레임 밖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들이 많아 중간 중간 이 영화가 공포영화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애초에 <사랑에서 영혼으로>는 공포영화의 성격을 지울 수 없는 멜로다. 공포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던 감독도 이야기의 태생적인 장점을 살리기 위해 <이도공간>의 사나리오를 썼던 퀴안링 양에게 대본을 맡겼다. 퀴안링 양 역시 사랑이라는 주제로 점철되는 이야기의 기본 틀은 살리면서 사람의 마음과 그 안에서 유도되는 욕망과 집착을 잘 표현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 상황이나 분위기로 전개되는 내용도 많아 의외로 대사가 적은데다가, 그 모든 것을 세 명의 배우가 해내야 하기 때문에 다소 힘이 부쳐 보인다.
<사랑에서 영혼으로>는 공포영화의 요소들을 많이 활용한 멜로영화다. 사랑하는 연인이 죽어 귀신이 된 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많지만, 이 영화는 공포영화의 흐름을 잘 따르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그런 이유로 사랑 이야기라는 중심 테마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만 무서운 장면이 많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혹은 멜로라인에서 분위기와 다른 공포영화의 특징들이 드러날 때는 혼란스럽기도 하다. 멜로에서 시작해 공포영화로 이어진 흐름을 의식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약간의 반전을 넣기도 했지만, 전체 이야기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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