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디 발렌타인>이 최초의 풀 3D 입체영화라는 타이틀을 가져갔지만, 사실 ‘최초’라는 말에는 여러 시행착오도 포함되어 있다. 하여 그 뒤에 이어지는 작품들이 어떤 점을 보완하고 어떤 점을 강화할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된다. 최근 개봉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는 풀 3D 입체영화로 입체 효과에 신경을 쓰면서도 기존의 시리즈가 이어온 형식적인 특징도 살리고 있다. 비록 공포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벤트용 3D 입체 비주얼에 발목이 잡힌 부분도 없지 않지만, 이런 부분은 3D 입체영상과 공포영화 장르가 결합되는 부분에서 생기는 요소다.
시리즈의 특징을 3D 입체 효과로 옮기다
이미 3D 입체영화 시장에서 공포영화 장르의 선전은 예견된 부분이었다. 장르적인 특성상 입체 효과를 살릴 수 있는 장면들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어드벤처 장르도 3D 입체영화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영화보다 테마파크의 이벤트 영상 쪽으로 활발하게 제작됐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도 3D 입체영화가 영역을 넓혀가고 제작도 많아지면서 다시 영화적인 형태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SF 장르의 <아바타>나 <크리스마스 캐롤>과 같은 판타지 장르의 영화들에서 3D 입체영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며, 이미 개봉된 2D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3D 전환으로 인해 장르에 제한 없이 제작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3D 입체효과에 관심이 큰 초기 단계에는, 공포영화에서 영향력이 더 크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 역시, 3D 입체 효과를 살리기에 안성맞춤인 장르다. <블러디 발렌타인>과 같은 전형적인 공포영화와는 다르게 소재나 장소, 표현에서도 3D 효과에 대한 자유도가 높은 편이다. 게다가 고어 장면보다는 어드벤처에 가까운 살인 장면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비슷한 패턴의 반복도 피할 수 있다. 무엇보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의 가장 큰 장점은 시리즈가 갖고 있던 기존의 스타일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3D 입체 효과에 치중하며 영화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고 시리즈를 거듭해오면서 굳어진 이 영화만의 규칙과 형식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3D 입체영화도 결국 영화라는 큰 범주 안에서 거론되어야 한다. 이야기 중심에 3D로 비주얼 요소를 추가시키는 형태의 애니메이션에서는 3D의 영향력이 적고, 3D 입체 영상에 치중해 보여주기에 급급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와 같은 실사영화는 오히려 이벤트용 영상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는 시리즈가 갖고 있는 영화적인 재미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비주얼을 적절하게 활용했다는 강점이 있다. 죽음의 운명이 끝까지 쫓아온다는 설정과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죽음에 이른다는 시리즈 전체의 주요 포인트에 입체 영상이라는 플러스 요인이 추가됐다.
전체 이야기를 다이제스트로 압축한 오프닝 시퀀스는 3D 입체영화로 변신한 시리즈의 4번째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엑스레이와 같은 그래픽으로 인물의 죽음을 미리 보여주는 오프닝은 실사가 아니어서 잔혹함이 덜 하지만, 3D 입체 영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묘한 사실감을 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살인 장면들도 타이어에 머리가 날아가고, 수영장 배수구에 몸이 빨려 들어가 분해되는가 하면, 에스컬레이터 기어에 몸이 끼어 으스러지는 식이어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그간 보여줬던 잔혹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표현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러한 장면에 3D 입체 효과가 더해져 튀어나온 눈알이 화면 밖으로 나뒹굴고, 뱀의 혀가 스크린 앞의 관객을 핥으며, 영화 속의 화염이 스크린을 뚫고 나와 관객을 뒤덮는 등 사실감을 극대화시킨다.
3D 입체 효과를 위한 기술적인 완성도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가 3D 입체영화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택한 도입부는 레이싱 경기장이다. 트랙을 달리는 자동차가 스크린을 넘나들고 4D로 관람할 때는 자동차의 움직임에 따라 의자가 움직이다가 충돌 시에는 덜컹거리는 효과까지 살린다. 실제 촬영은 2개 주를 오가며 촬영됐는데, 실제 경주 장면은 앨라배마의 모빌 인터네셔널 스피드웨이에서 촬영됐고, 관람석은 뉴올리언즈에 세트를 지어 촬영됐다. 놀랍게도 이 관람석 세트는 스티로품 소재로 만들었으며 43m 길이의 관람석과 1차선 경주로, 152m 길이의 2층 관람석으로 완성됐다. 이 세트에서 95% 실사로 촬영해 사실감을 살림과 동시에 3D 입체 효과를 극대화했다.
3D로 촬영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는 페이스 퓨전 시스템(PACE Fusion System)이 개발한 초고화질 3D 기술의 심도와 원근감으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영상을 선보인다. 애초에 3D에 관심이 많았던 제작진은 3D 기술에 대해 연구하다가 빈스 페이스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퓨전 3D 기술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4번째 시리즈를 3D로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제작 여건에서 제약이 따르기도 했지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 제작진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3D 촬영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발했다. 또한 많은 부분을 실사로 촬영해 입체 영상의 완성도도 높였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 촬영에 사용된 소니 F23 카메라는 최초로 3D 촬영에 동원되었는데, 전 세계 5대 밖에 존재하지 않는 프로토타입의 3D 장비가 함께 장착됐다. 또한 이동식 후반작업 차량이 현장에 투입되어 촬영 즉시 촬영된 3D 입체 영상을 확인할 수 있어 완성도를 높였다. 실제 촬영에서는 좁은 공간에서의 카메라 움직임에 애를 먹었지만, 핸드헬드에서도 안정적인 3D 영상을 얻어냈으며, 수중 촬영은 물론 줄에 매달리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도 좋은 결과물은 보여줬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던 폭발 장면이나 레이싱 경주 장면의 경우는 모토캠을 장착한 자동차에 카메라를 올려 촬영하기도 했는데, 160Km의 속도까지 견뎌내며 3D 영상을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기존의 3D 영상은 움직임이 많은 촬영에서 한계를 보였지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에서는 다양한 시도로 가능성을 찾았다.
특히 영화의 성격이 3D 입체 영상과 궁합이 잘 맞았다. 자동차에서 튀어나오는 드라이버, 날아다니는 타이어, 뿜어져 나오는 물, 혀를 날름거리는 뱀 등 의도적으로 입체 효과를 주기 위한 장면들이 많아 사실감을 더한다. 또한 이야기뿐 아니라 촬영, 특수효과, 시각효과, 세트, 미술 등 모든 비주얼 요소가 3D 입체 효과에 맞춰 제작돼 시리즈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특히 세트의 경우는 평소보다 1.5배 이상 더 크게 제작됐는데, 이는 배우와 세튼 간의 충분한 거리를 확보해 입체적인 느낌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대중의 지지를 얻기 시작한 3D 입체영화
3D 입체영화는 2009년에서 2010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객과 만날 것이다. 애니메이션에 집중되던 초기와는 다르게 장르의 폭도 넓어졌고, 3D 기술에서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아직 3D 입체 영상은 정확한 포맷을 만들지 못했다. 여러 컨텐츠가 제작되면서 각자의 노하우에 따라 영상의 기준과 작업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는 과정이다. 이러한 시기에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는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만약 이 영화를 2D로 본다면 기존의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팬들에게만 환영받았을 지도 모른다. 특별할 것이 없는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 죽는 방법만 달리한 반복적인 공포영화에 머물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3D 입체영화를 선택해 외형을 바꿔 영화에 대한 다른 시선을 유도한 것은 큰 효과가 있었다.
단순히 3D 입체영화라는 이유로 영화의 질이 높아졌다는 말이 아니다. 장르 영화는 그 영화가 지닌 장르적인 특징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보일 것인가가 관건이다. 촬영 기술의 발전이나 미장센의 디테일, CG와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두 이를 위해 변화를 거듭해왔다. 이제 3D 입체 효과도 장르의 성격을 드러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장르의 성격뿐 아니라 영화에 사실감을 불어넣는다. 이미 미국은 드라마와 스포츠도 3D 입체로 촬영하고 있다. 비록 디스플레이의 보급이 늦어 공식적으로 방영하지는 못하지만, 수많은 컨텐츠 축적을 통해 노하우를 키우고 있다. 비록, 아직은 그 영역이 좁고 활용성도 크지 않지만, 조만간 스크린을 통한 평면 영상은 대부분 공간에 표현되는 입체 영상으로 대체될 것이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는 3D 입체 효과와 더불어 시리즈가 유지해오던 영화적인 요소들을 담아냈다. 3D 입체 영화가 현란한 기술에 의존해 볼거리만 주는 이벤트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3D 입체 영상이 부족한 영화적 완성도를 완벽하게 채워주진 못하겠지만, 영화의 특성에 맞는 적합한 표현법을 찾아준 좋은 사례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어떤 형태로 기획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3D 입체영화와 영화의 근본적인 경계가 조금은 허물어졌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덕분에 다음 작품들이 장르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힘을 얻지 않았을까?
2009년 11월 2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