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을 무대로 한 <푸른 강은 흘러라>는 '연변'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일말의 편견을 없애는 영화다. 국내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연변의 조선족은 지나간 시대의 감성과 아픈 역사를 환기시키는 존재다. 기존 드라마와 영화들이 이런 고정관념을 심는데 큰 일조를 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 속 조선족은 순수하다 못해 촌스럽고 안타깝다 못해 처량하게 그려지기 일쑤였다. 때로는 과장된 연변 사투리로 희화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푸른 강은 흘러라>의 연변 청춘들은 이런 연변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외부인의 시선과 연변의 특수한 역사성에 의해 재단되어온 조선족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연변의 사람들의 진짜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숙이와 철이로 대변되는 연변 10대 청소년들의 생활은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들 역시 인터넷이 생활화돼 있으며 채팅을 즐긴다. 주요 고민도 학업과 이성문제다.
그러나 <푸른 강은 흘러라>는 여전히 연변이라는 공간이 갖는 순수성과 향수를 간직한 영화다. 영화는 으레 국내 청춘영화들이 그렇듯 암울하고 절망적이기 보다 제목처럼 맑고 싱그러운 청춘물이다. 후반부의 사건이 비극의 정조를 드리우지만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밝음과 순수다. 숙이와 철이는 초등학교의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올법한 착실하고 선량한 학생들이다. 긍지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초반은 마치 공익광고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한낱(?) 오토바이가 철이를 탈선으로 이끌었다는 설정 역시 어두움보다 순수성을 부각시킨다.
이런 순도 높은 감성 탓에 <푸른 강은 흘러라>는 감정이입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공감하기 힘든 영화가 될 수 있다. 교과서적인 대사와 단순한 갈등구조에는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 연변 10대들은 TV 드라마 속 연변처녀만큼이나 심심하다. 후반부 비극은 철이의 탈선이 계기가 됐다고 하기엔 너무 엄청난 사건이어서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그동안 국내 미디어의 편견과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연변의 현재를 끄집어내려는 시도만으로도 목표의 절반을 성취한다. 여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10대들에게 삶은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강미자 감독의 진정성이 영화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2009년 10월 7일 수요일 | 글: 하정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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