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글이더라도 퇴고는 필수다. 좀 더 나은 표현을 찾고 적절한 단어를 집어넣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글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의 사랑도 항상 퇴고를 거친다. 첫 만남의 설레임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두근거림은 무뎌가고 상대편의 장점 보다는 단점이 더 잘 보이게 된다. 다툼은 잦아지고 끝내 헤어짐으로 마무리 되지만 그 시행착오의 시간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된다.
영화 <내 남자는 바람둥이>는 뉴욕을 배경으로 오늘날 현대 여성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편집일을 하는 브렛은 어느 날 전설적인 책 편집자 아치를 만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매력이 넘치는 아치를 사랑하게 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행복에 빠진다. 하지만 악독한 새 편집장이 괴롭히고 감춰져 있던 아치의 문제들을 하나 둘씩 알게 되면서 그녀는 잠시 잊었던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감독인 마크 클레인은 <새런디피티> <어느 멋진 순간>의 각본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로맨틱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운명과 사랑이란 주제를 가지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재주가 있다. 하지만 <내 남자는 바람둥이>에서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칙릿 (20대 여성을 타켓으로 한 문학작품)문학에 속하는 멜리사 뱅크의 ‘소녀들을 위한 헌팅과 피싱 가이드 (The Girl's Guide to Hunting and Fishing)’를 직접 시나리오 각색을 하고 연출까지 맡으며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사랑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여성의 입장에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사랑의 달콤함 보다는 현실적인 면을 많이 부각시킨다.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와의 연애, 어려움에 처하면 어디서든 나타나는 백마 탄 왕자, 각계 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파티의 초대 등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꿨던 상황들이 연출되지만 로맨틱 코미디 보다는 멜로 영화라고 봐도 좋을 만큼 이야기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주인공들의 심각한 연기의 반해 감초역할을 하는 조연들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이야기의 무거움에 유쾌함은 쉽게 잊혀 진다. 또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쇼퍼 홀릭>과 같은 칙릿소설을 원작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에서 여주인공들이 입는 의상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브렛의 의상은 뭔가를 보여주기 보다는 자신의 표현 욕구를 감추는데 더 활용된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에서 인상 깊은 팜므파탈역을 보여줬던 사라 미셀 겔러와 원조 섹시가이로 불렸던 알렉 볼드윈의 호흡도 잘 맞아 보이지 않는다. 극중 많은 나이 차이를 극복하며 사랑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있었겠지만 예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한껏 발산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대이다. 사라 미셀 겔러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가지고 있는 무게에 짓눌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알렉 볼드윈은 너무나 올드한 멜로 스타일로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칙릿 소설을 영화화 하면 왜 이렇게 무거울까? 오늘날 여성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달콤함을 다 뺀 것일까? <섹스 앤더 시티>에서 유쾌함을 주며 그들의 삶 자체에 공감을 갖게 했던 캐리와 친구들이 보고 싶을 뿐이다.
글: 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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