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말했다. ‘두려움은 자유의 현기증이기에…….’ 언제나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지만 아무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를 맞는 것처럼 이내 두려움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 비가 한 순간에 그치듯 현기증은 사라지고 다시 자유를 만끽한다.
<타인의 취향>, <룩 앳 미> 로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아네스 자우이 감독은 이번 영화 <레인>에서도 그 특유의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치적 야망을 키우기 위해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는 페미니스트 작가 아가테 (아네스 자우이), 한물 간 다큐멘터리 감독 미셸 (장 피에르 바크리),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는 신참 카림 (자멜 드부즈). 하지만 첫 날 부터 일은 꼬이고,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한 술 더 떠 그들의 사생활에 작은 문제들이 생기며, 끝내는 서로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와중에 하늘은 선물로 비를 내려 준다.
감독은 매번 다양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인물과 인물 사이의 마찰음을 포착해 코믹스럽게 보여준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장 피에르 바크리가 있기 때문이다. 공동 각본가이자 주연 배우, 그리고 감독의 남편인 그는 이번에도 같이 힘을 모아 유쾌한 영화 한편을 만들었다. 극단시절부터 함께 시나리오를 써 왔고,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그 완성도를 증명해 왔다. 특히 진중한 상황에서 나오는 어이없는 대사들과 함께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그의 표정연기는 코미디를 표방하는 배우들 못지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네스 자우이의 영화가 단순히 코믹적인 요소만 있어서 사랑 받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사람 때문에 삶이 힘들지만 또한 사람 때문에 그 힘듦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아가테를 통해 언제나 최고를 지향하고 독단적인 성향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꼭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영화에서 중요한 이미지인 비는 모두에게 고난과 슬픔을 안겨주지만 반대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더불어 우울한 날씨로 대변되는 영화 속 분위기는 기쁨만이 가득 한 슈베르트와 비발디의 음악을 삽입하면서 행복감으로 바뀌게 된다. 오늘은 비를 맞는다 하더라도 내일의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그들의 안간힘에 우리는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연출가 겸 각본가인 그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무게를 들었다 놨다 하며 감정의 폭을 조율한다. 어쩌면 재미없을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흥미 있게 바라보게 만드는 능력과 그 안에 피어나는 작은 희망은, 우리가 계속해서 아네스 자우이의 영화를 찾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TIP
그녀의 영화에서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17살 때부터 성악을 배우며 음악에 대한 애정을 품었던 아네스 자우이는 자신이 연출한 영화의 OST에 심혈을 기울인다. 첫 번째 영화인 <타인의 취향>에서 프랑스 국민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 Rien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 을 사용하여 인상적인 엔딩을 선사했다. 음악을 소재로 했던 두 번째 영화 <룩 앳 미>에서는 크랭크 인 하기 3년 전부터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을 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변주곡으로 쓰인 슈베르트의 ‘An Die Musik (음악에)’를 비롯해 그녀가 직접 부른 'Lamento D’ella Nympha' 등 좋은 음악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살렸다. 마지막으로 영화 <레인>에서는 슈베르트의 ‘Der gondelfharer (곤돌라의 뱃사공)’과 시편 126편을 바탕으로 작곡한 비발디의 ‘Nisi dominus (주께서 아니하시면)’이 삽입되어 인생의 행복을 노래한다. 영화를 보러 갈 계획이라면 미리 들어 보시고 관람에 나서는 것도 좋을 듯싶다.
2009년 7월 7일 화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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