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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형제 사기단 | 2009년 6월 20일 토요일 | 하정민 기자 이메일

사기의 시작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유년시절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자란 형 스티븐(마크 러팔로)과 동생 블룸(애드리안 브로디)은 아이들의 환심을 사로잡기 위해 최초의 사기를 시작한다. 이들의 사기는 곧 어른들에 의해 발각되지만 사기본능을 발견한 형제는 또 다른 위탁가정이 아니라 러시아로 떠난다. 스티븐의 완벽한 시나리오와 블룸의 리얼한 연기는 10여 년 만에 사기계를 평정한다. 하지만 블룸은 사기와 거짓 인생에 점차 염증을 느끼고 그 세계를 떠나고 싶어 한다. 블룸을 말리던 스티븐은 동생에게 마지막 한탕을 제안한다. 타깃은 부모를 잃고 홀로 살아가던 백만장자 페넬로페(레이첼 와이즈). 하지만 블룸이 페넬로페에게 한 눈에 반하고 무료한 삶을 살던 페넬로페가 형제의 수상쩍은 행동에 강렬한 호기심을 내비치면서 형제의 사기극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블룸형제 사기단>은 스릴러 <브릭>(2005)으로 평단과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라이언 존슨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기극의 고전 <스팅>(1973)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블룸형제 사기단>은 숨 막히는 반전이 거듭되는 치밀한 플롯의 사기영화는 아니다. 블룸형제의 사기행각은 처음부터 예측 가능하며, 트릭은 반전의 묘미를 전달하기엔 지나치게 느슨하고 허술하다. 그렇다고 21세기 대표 사기 영화 <오션스> 시리즈처럼 화려하고 매끈한 만듦새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블룸형제 사기단>의 영화적 완성도를 장르적 잣대로만 잰다면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을 놓칠지도 모른다. 존슨 감독이 <스팅>에서 가져온 것은 정교한 스토리보다 사기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전통 사기극의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멋이기 때문이다.

천재 사기꾼 형제와 아름다운 재벌가 상속녀가 세계를 돌며 펼치는 속고 속이는 게임은 사기의 목적이 돈이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유쾌하고 따뜻하다. 영화는 형제를 따라다니는 페넬로페를 테러의 용의자로 밀어 넣고도 금세 코믹한 해프닝으로 마무리 짓는 등 러닝타임 내내 그 어떤 위화감도 조장하지 않는다. 희대의 사기를 치면서도 의리와 사랑을 버리지 않는 형제에게서는 때때로 고전적인 남성의 기품이 묻어난다. 단적으로 중절모와 수트를 고집하는 그들의 외양을 보라.

기상천외한 한탕주의를 대신하는 것은 인생에 대한 통찰이다. 세상 천지에 자신들을 지켜줄 것은 둘밖에 없다는 것을 일찍 감치 깨닫고 사기에 뛰어든 블룸형제처럼 세상과 고립된 삶을 살던 페넬로페도 외로움 때문에 사기에 가담한다. 그들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최선을 다해 사기 행위에 임하다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사기극임을 잊기도 한다. 하지만 진심을 깨닫는 순간 형제와 페넬로페는 자신들의 모습이 가짜임을 더욱 절감할 뿐이다.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열심히 포장하고 위장하는 블룸형제 일당의 행각에는 사기를 사기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인생의 아이러니함이 발견된다.

덧붙여 존슨 감독은 사기와 인생의 등식에 영화감독의 자기반성적 고백을 슬쩍 끼워 넣으며 사기와 영화의 방정식도 풀어나간다. <블룸형제 사기단>은 준비된 각본이 있고 이를 연기하는 자가 있다는 점에서 사기와 영화가 일맥상통한 작업이라는 것을 곳곳에서 설파한다. 완벽한 사기극을 연출하기 위해 동생의 인생까지 수정하고 삭제하는 스티븐은 영화감독 다름 아니다. 극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환상을 경험하는 스티븐은 감독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블룸은 어떠한가. 형의 각본에 따라 수많은 삶을 연기한 그에게서는 배우의 피로가 묻어난다.

그렇다고 인생과 영화라는 묵직한 테마의 무게가 <블룸형제 사기단>의 재미까지 짓누르는 것은 아니다. <블룸형제 사기단>은 진지함보다 유쾌 발랄한 감성이 돋보이는 영화다. 사기는 위험수위를 넘기지 않고 고민은 적정수준에서 멈춘다. 몬테네그로, 그리스, 프라하, 멕시코의 매혹적인 풍광은 이들의 사기극에 동화적 판타지를 덧입힌다. 블룸과 페넬로페의 로맨스는 이 영화의 장르를 로맨틱 코미디라 명명해도 무방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에 활력을 더하는 것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도통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통에 마지막까지 알쏭달쏭한 존재였던 스티븐과 사색적인 표정으로 고뇌하면서도 시키면 다 하는 블룸 그리고 '예스' '노' '술 주세요' 단 세 마디의 영어만 할 줄 아는 폭발전문가 뱅뱅(키쿠치 린코)의 콤비플레이는 <스팅>과 <오션스>시리즈의 악당들 못지않다. 그중 군계일학은 단연 4차원의 상속녀 페넬로페. 람보르기니를 '무심하고 시크하게' 벽에 들이받으며 등장한 그녀는 외로운 생활을 이기기 위해 취미 수집을 취미로 삼은 백만장자. '혼자 놀기'의 달인인 그녀가 독학으로 마스터한 것은 다수의 외국어와 브레이크 댄스, 디제잉, 탁구, 하프 연주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심지어 외발자전거를 타며 전기톱을 저글링 하는 기술까지 연마했을 정도.

데뷔작에서 장르의 규칙을 고수하면서도 은근히 뒤틀었던 존슨 감독은 이번에도 전통적인 사기극을 바탕으로 로맨스와 드라마, 코미디 장르를 배합한다. 그 결과물이 <브릭>만큼 신선하고 획기적이진 않지만 존슨 감독의 탁월한 리듬감은 여러 장르와 이야기를 솜씨 좋게 녹여낸다. 그의 다음 영화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2009년 6월 20일 토요일 | 글: 하정민 기자(무비스트)




-비열한 남자들의 세계 대신 고전적인 낭만을 꿈꾸는 남자들의 사기를 보라.
-동화적 판타지지만 가끔 이런 꿈을 꾸는 것도 나쁘진 않다.
-올 여름 휴가계획이 없다면,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애드리언 브로디, 마크 러팔로, 레이첼 와이즈의 엉뚱 발랄한 매력을 보는 재미가 쏠쏠
-사기극의 통쾌함은 없다. 달콤 쌉싸름한 깨달음이 있을 뿐.
-이야기의 현실성과 개연성이 목숨만큼 중요하다면 안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후반부 블룸형제의 순진한 세계관에 '딴지'를 걸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른다.
18 )
skdltm333
평이 갠찬네요..   
2009-06-20 17:35
jhee65
레이첼 와이즈 너무 좋아   
2009-06-2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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