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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담담하고 섬세한 성장에의 기록
바다쪽으로, 한 뼘 더 |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 하성태 이메일


<아이다호>에서 리버 피닉스가 길 거리에 쓰러질 때, 기면증은 아웃사이더와 루저에 대한 극명한 은유로 기능했다. <4인용 식탁>에서 전지현이 하늘거리며 쓰러질 때, 그건 그녀의 기이한 능력을 설명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단지 성인의 0.1%가 앓는 다는 기면증은 영화 속에서도 그리 보편적인 소재는 아니었다.

<바다쪽으로, 한 뼘 더>는 다르다. 여기서 기면증을 앓는 소녀 원우는 길 잃은 루저도 아니고, 더더욱 영적인 능력을 뽐내지도 않는다. 다만 한창 성장할 나이의 소녀에게 기면증은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드는 일종의 장애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장애를 신파로 그려낼 생각이 추호도 없다. 담담한 일상을 쫓아가는 카메라는 원우를 위무하려 들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담담함이 이 영화의 빛나는 장점이다.

원우는 시도 때도 없이 쓰러져 잠이 드는 기면증을 앓고 있다는 것 외에는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이다. 또 하나, 일찍 아버지를 여위고 점토 공예를 강의하는 40대 초반의 엄마 연희, 그리고 외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딱히 큰 사건 없이 나른한 일상을 보내던 원우와 연희에게 각각 같은 반의 무뚝뚝한 친구 준서와 사진을 강의하는 선재가 다가선다. 상업영화의 문법을 따르자면 두 커플의 로맨스가 알콩달콩 펼쳐져야 할 것 같지만, 최지영 감독은 그렇게 쉬운 길로 빠지지 않는다. <바다쪽으로, 한 뼘 더>는 온전히 원우와 연희의 심경을 섬세하게 풀어나가는데 주력한다.

<바다쪽으로, 한 뼘 더> 시놉시스나 캐릭터를 놓고 봤을 때 어쩔 수 없이 <...ing>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영화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여고생 딸과 이를 안타깝게 지켜봐야 하는 친구 같은 엄마와의 관계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죽기 직전 생긴 남자친구와의 로맨스와 동등하게 엄마의 모성애를 파고 큰 감정의 진폭으로 그려내는 <...ing>와 비교했을 때, <바다쪽으로, 한 뼘 더>는 한층 더 성숙하고 진중하다. 일례로 원우와 연희의 로맨스를 그리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첫 만남의 설레임이나 아픔을 그리는데 열중하지 않는다. 그저 그러한 관계조차도 생의 자잘한 일상의 한 부분과도 같다. 그래서 원우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남자친구와의 데이트가 아니라, 엄마가 아버지를 잊지 않았을까 하는 서운함이 먼저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연애'란 사건이 아니라 삶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시선 자체다. 고즈넉한 화면과 여유로운 편집의 리듬감 또한 그러한 관조적인 시선을 가능토록 도와준다. 그렇게 <바다쪽으로, 한 뼘 더>는 사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삶의 일상을 그대로 닮아 있다.

한편으로 영화는 <...ing>외에 이와이 슈운지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무뚝뚝하지만 "자식이 목구멍으로 음식 넘기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다는 말처럼 선문답 같은 한마디로 인생의 정수를 논하는 외할머니는 <러브레터>의 주인공의 할아버지를 연상시킨다. 특히나 영화가 끝나기 직전, 마당 밭을 일구던 할머니가 원우의 아버지가 예전에 지붕에 던져놨던 원우의 치아를 건네주는 장면은 <러브레터>의 후반부의 그 아련한 감정과 엇비슷하게 닮아 있다. 또, 다락방에서 오래된 카메라를 꺼내든다든지, 구급차에 실려간 할머니와 원우의 쓰러진 장면을 교차시킨 일종의 트릭, 그리고 여고생 원우의 심드렁한 모습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과거지향인데다 아련한 감정을 극대화시킨 몇몇 이와이 슈운지의 연애담과도 닮아 있지만, <바다쪽으로, 한 뼘 더>는 그 중에서 영화적인 과장이나 수식을 탈색시켜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극적인 장치에 방해받지 않고 담담하게 원우의 성장담을 따라가게 된다.

어찌 보면 심심할 수 있을지 모르는 담담함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두 배우의 가감없는 연기다. 실제 26살이지만 고등학생 연기를 탁월하게 소화해낸 '절대 동안' 김예리와 <우아한 세계>의 호연 이후 독립영화에 출연한 박지영은 안정된 호흡을 보여준다. 그래서 두 사람의 편안한 연기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90분의 러닝타임이 훌쩍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로 삶과 성장에 대해 진중하게 성찰하는 <바다쪽으로, 한 뼘 더>는 한국영화의 성장영화 목록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 글_하성태(무비스트)




-식상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담백한 성장 영화, 오래만인 걸!
-섬세한 화면과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올 한 해 독립영화들이 거둔 수확은 길이 기록될 것이다.
-'최강 동안' 김예리의 발견!
-단 하나, 연희의 대사들이 약간은 식상하고 너무 평이하다.
-결코 극장 수가 많지 않으니, 발품을 좀 팔아야만 볼 수 있을듯.
12 )
mooncos
느낌이 좋은 성장영화인듯   
2009-05-23 01:59
gaeddorai
제목이 참 좋아요   
2009-05-23 01:43
ooyyrr1004
제목이 뭔가 의미심장하네   
2009-05-22 22:07
ehgmlrj
우연히.. 예고편을 봤는데.. 끌리는..   
2009-05-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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