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가득 차 떨고 있는 중년부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한 그녀의 목소리는 곧 비명으로 바뀌고,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이렇듯 별다른 화면 없이 소리만으로 꽤나 섬뜩한 오프닝을 선사하는 영화 <에코>는 제목에서도 연상되듯이 낯선 소리로써 전달되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중심으로 한 할리우드 공포영화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갔던 ‘바비’는 형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는 이미 알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살던 낡고 허름한 아파트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 보기 만해도 섬뜩한 낡은 아파트, 그리고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상한 주민들까지 영화 <에코>는 진부하리만큼 전형적인 공포요소로 시작한다.
혼자 중얼대기만 하는 노부인과 복도에 앉아 장난감 피아노만 치는 소녀 등 주민들까지도 기분 나쁜 이 아파트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는 바비. 하지만 매일 밤마다 집 안 여기저기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소리들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결국 그 소리의 원인을 찾던 바비는 피아노 줄 틈에 끼어 있는 피 묻은 손톱과 누군가 손가락으로 뚫어 놓은 듯한 벽의 작은 구멍, 벽장 속 어머니의 이상한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테이프 등 여기저기서 공포스러운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초반 30여분까지도 이렇다할 공포를 제공하지 않는다. 게다가 뭔가 보여줄 듯이 한껏 분위기를 만들어 가다가도 뚝뚝 끊어가는 전개는 늘어지기까지 한다. 또한 이러한 전개는 중반 이후부터 이어질 스토리에 대해서도 금세 예측하게 만들어 버리기까지 한다. 극악무도한 살인마 영화나 자극적이고 끔찍한 슬래셔 무비처럼 스피디한 편집과 비주얼로 승부하는 할리우드식 공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영화 <에코>의 공포가 그리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영화 역시 여느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처럼 동명의 필리핀 영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원한이 테마가 되는 동양적인 정서와 할리우드의 비주얼적인 공포는 매번 썩 좋은 조합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영화 <에코> 역시 그러한 결과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공포영화로서 어느 정도의 매력은 지니고 있다. 시종일관 밀어 붙이며 ‘빵빵’ 터뜨려주지 않기에 소스라칠 만큼 공포스럽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조여 주는 심리적인 공포가 있어 금방 질리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다. 여기저기서 벽을 두드리고, 아이가 뛰어 다니는 소리, 옆집에서 들리는 두 남녀의 싸움소리 등 아파트라는 일상적인 공간과 흔히 들을 수 있는 일상적인 소리를 공포의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이 단순하고 느린 스토리 전개 속에서 그나마도 긴장감을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공포영화의 묘미라 하면 뛰어나든 허접하든 간에 반전이 담긴 결말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뻔할 줄 알면서도 공포영화를 보게 되는 것 역시 그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에코>의 결말은 나름 신선하다고 할 수 있다. 충격적이거나 소름끼칠 정도가 아니기에 반전이라고까지 표현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착한 결말이 아니라는 점은 흥미롭다. 작년의 한풀이를 하기라도 하듯이 올해는 상반기부터 할리우드 공포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살인마 영화, 리메이크 영화 등 다들 비슷비슷한 영화들만 보이는 와중에 그나마 <에코>는 조금 특별한 공포를 제공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 글_김진태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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