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지(elegy)’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의 죽음이나 불행, 실연당한 슬픔에 잠긴 심정을 읊은 시 또는 악곡을 이르는 말이다. ‘비가’라는 말로도 불리는 이 말은 슬픔과 그리움의 정서로 채워진 안타까운 탄식의 말이기도 하다. 영화 <엘레지>는 곳곳에 이러한 감정을 수면 아래부터 점층적으로 채워 넣으며, 사랑이되 사랑인 것이 두려워 물러났던 이들의 뒤늦은 확신을 어느 순간 고요히 분출해 버린다.
데이빗(벤 킹슬리)은 지성과 카리스마를 지닌 저명한 문학교수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것에, 특히나 아름다운 여인들에 집착을 보이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눈에 너무나 정숙하고 아름다운 대학원생 콘수엘라(페넬로페 크루즈)가 들어온다. 데이빗은 오로지 그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그녀를 단순한 욕망의 대상으로서 품에 안는다. 하지만 하룻밤이라 생각했던 욕망은 점차 불안과 소유라는 집착이 되어 그녀의 매력 안에 머문다. 이것은 오래도록 지속된 그들의 만남에 위태로운 자국이 된다. 그리고 데이빗은 콘수엘라가 진실한 사랑을 원하자 그녀에게서 도망쳐 버린다.
그와 그녀는 같은 생각을 하지만 시간의 차이를 둔다. 어쩌면 이것은 서로를 품고 어루만졌던 육체의 교감과는 상관없는, 그들의 서른 살이라는 법적인 나이차 때문일지 모른다. 사랑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는 자신이 두렵고, 이 두려움은 현실의 무게로 인해 외면으로 바뀌어 버린다. 이와는 달리 아직 팽팽하고 섹시한 젊은 여인의 혈기는 보란 듯이 사랑을 확신한다. 그러나 상대의 머뭇거림은 현실을 인정하게 만들며 그녀 역시 등을 돌리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이별한 순간부터 진짜 시작을 한다. 절친한 교수 조지(데니스 호퍼)와 여자와 인생에 관해 아줌마처럼 수다를 떨어도 그것은 이상일 뿐이고, 20년 동안 관계를 맺어온 캐롤린(패트리샤 클락슨)의 유혹적 자태는 가슴에 새긴 젊은 여인의 살결에 비견되며 씁쓸함을 남기는 도구가 될 뿐이다.
<엘레지>는 아름다운 여인을 중심에 두고 남자가 이끌어가는 이야기다. 그의 내면을 따라가며 여인에 대한 자취를 더듬어 나가고, 여인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남자의 심리를 파고든다. 이는 ‘후회’라는 미련의 그림자를 관통하며 정확히 ‘사랑’이라는 과녁의 정중앙에 꽂힌다. 그렇기에 영화 전반에 걸쳐 ‘엘레지’의 정서가 흐르지만, 마지막 순간 사랑의 포용에 잠식당한다. 이것은 뒤늦은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고, 주변에 무책임했던 한 남자 인생에 대한 스스로의 질타와 용서이기도 하다.
이러한 감정을 아우르며, 극중 서른 살이라는 나이 차를 진정한 사랑으로 만든 것은 분명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겉으로는 누구보다 심플하게 삶을 살 것 같지만, 내면은 고독으로 뒤틀린 남자를 위트 있고, 진심이 있는 남자로 만든 ‘벤 킹슬리’. 아름다운 예술품이라는 극중 대사가 전혀 과하지 않은, 데이빗으로 하여금 완벽한 소유욕을 자극하게 하는 ‘페넬로페 크루즈’의 육체와 내면의 연기는, <사랑해, 파리: 바스티유>편을 연출했던 여성감독 ‘이자벨 코이셋’ 특유의 섬세하고 절제된 연출력과 만나 더욱 빛을 바라며 울림을 채운다.
2009년 3월 19일 목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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