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관람하기 전에 영화의 본질을 한 눈에 파악하길 원한다면 2년 전 일본 애니메이션 <폭풍우 치는 밤에>에서 가브(늑대)와 메이(염소)의 관계를 회상하면 쉬울 것이다. 기존 영화와 문학상의 설정대로라면 먹이사슬 중 최상위 생명체는 인간이 아니라 뱀파이어다. 뱀파이어의 눈으로 볼 때 먹잇감과 사랑에 빠지다니! 이 영화는 <렛 미 인>의 설정과 마찬가지로, 종(種)을 초월한 로맨스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적 흥행을 보장 받고 싶음과 동시에 완성도를 높이고자 할 때 자주 애용되는 방법은 웰메이드 영화의 리메이크 혹은 탁월한 이야기를 영상화하는 일이다.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하는 케이스로, 현재 헐리우드 영화계는 소재 고갈에 시달린다고는 하지만 전 세계의 탁월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있고 그러한 일련의 시도에 있어서 제작사에게 달콤한 열매를 안겨준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이 영화다. 왜냐하면 스테프니 메이어의 베스트셀러 4부작 판타지 소설 중 첫 번째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트와일라잇>은 미국 개봉 하루 만에 제작비에 가까운 금액을 벌어들이는 흥행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에 속편을 명백히 암시하는 시퀀스가 나오는데 이는 원작이 단편으로 마무리 되지 않음에 기인한다.
갓 전학 온 이사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를 학교에서 처음 보았을 때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가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비쳤던 연유는 이사벨라(이후 표기엔 벨라)가 뱀파이어인 에드워드에게 있어서 최상의 흡혈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함과 더불어 그녀에 대한 깊은 호감을 갖게 됨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다. 벨라가 선풍기로 다가설 때 에드워드의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라 - 사흘 굶은 단식자 앞에서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는 것과 매한가지 격인 그의 얼굴 표정을. 인간에 대한 흡혈 욕구를 백여 년간 자제하고 동물의 피로 대리만족을 채웠던 에드워드에게 벨라는 참을 수 없는 흡혈 본능을 자극함과 동시에 벨라에게 깊은 호감을 갖게 만든다. 처음에 벨라는 에드워드의 반감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시간이 들어감에 따라 에드워드의 정체를 알게 되고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두려움보다 에드워드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앞서가게 된다.
그간 뱀파이어 영화와의 큰 간극 가운데 하나는 뱀파이어의 세계에 인간이 발을 들여놓는다는 점이다. 그간의 뱀파이어 영화들은 뱀파이어와 인간의 관계가 상호 배타적이자 상호 불간섭적인 영역이었다. 하나 에드워드가 속한 컬렌 가문 뱀파이어들은 벨라라는,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절대 타자(他者)인 인간을 배척 혹은 그들 나름대로의 통과의례 없이 일원으로 기꺼이 받아준다. 뱀파이어 공동체에 이종생명체인 인간을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설정은 후반부 제임스를 주축으로 하는 노마드 뱀파이어와 컬렌 가문 뱀파이어가 대립각을 세울 때 벨라에게 많은 도움을 제공한다.
인간이라는 속성을 그대로 놓아두면서 인간과는 이질(異質)공동체인 컬렌 가문 뱀파이어와 공통분모로 존재하는 벨라를 에드워드가 바라볼 때 인간이라는 그녀의 본질을 뱀파이어로 변화시키고 싶어하지 않음은 벨라를 인간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면서 그녀를 보호해주고픈 연인으로서의 배려가 그녀의 본질을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로 변화시키고 컬렌 공동체의 일원으로 융합하겠다는 마음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영화 속 시퀀스들을 통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에드워드의 벨라를 위한 타자배려적 관점의 사랑을 보노라면 실제 연애에서 결핍되기 쉬운 백마 탄 왕자 판타즘의 영상 대리만족을, 완벽한 남성의 모본에 가까운 뱀파이어 남성 에드워드를 통해 투영토록 한다.
관객들이 관람 전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 호러 액션을 기대하고 이 영화를 찾는다면 관람 포인트 면에 있어서 실패할 확률이 아주 높다. 트레일러 속에서 나타나는 화려한 액션 시퀀스는 영화 속에서 단 10여 분 밖에 할애되지 않는다. 대신 관전 포인트를 로맨스로 규정하고 관람한다면 이 영화의 관전 맥락에 있어 헛다리짚지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간 <반지의 제왕><황금 나침반>과 같은 판타지 영화를 접하다가 이 영화가 판타지에 속할 수 있느냐는 반론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뱀파이어가 이상형에 근접한 남성 에드워드로 제시되고 종(種)을 초월한 로맨스를 구축한다는 설정 자체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 뱀파이어를 다룬 판타즘에 기인한 것이기에 판타지로 자리매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판타지 영화의 장르적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 초월적 세계만을 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 영활 바라본다면 - 이 영화는 세상과의 간극이 상당한, 즉 초월성에 근간을 둔 설정의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 숨 쉬는 현실에 근간하여 구축된 판타지기에 그간의 판타지와는 성격이 다를 것이다. 그와 더불어 이 판타지는 낭만적 연애담을 이야기의 큰 축으로 하기에 관객의 성별 그리고 관객들의 연령대에 따라 영화에 대한 반응들은 각기 상이하게 나타날 것이다.
2008년 12월 5일 금요일 | 글_박정환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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