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조승희가 벌인 버지니아 총기난사라는 소재와 <미쓰 홍당무> 같은 사회 비주류적 인물이 결합하면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까. 이 영화는 비주류적 인물 설정과 총기난사라는 끔찍한 소재를 가지고 사회적 부적응에 대한 잠재된 분노와 소시민적 영웅담, 그리고 로맨스 스토리 이 모두를 동시에 아우른다. 그와 더불어 90년대 헐리우드에서 맹활약하던 크리스찬 슬레이터는 그동안 <어론 인 더 다크><할로우 맨 2> 같은 작품성 낮은 영화들에만 연속 출연함으로 관객들의 실망을 한 몸에 받았지만, 이 영화 출연으로 그간 그에 대한 우려를 기우(杞憂)로 여기게 만든다.
소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주인공 밥(크리스찬 슬레이터)에게는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직장동료 하나 없을뿐더러 홀로 점심식사를 하는 직장 내 왕따이기도 하다. 밥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는 고작해야 집에서 기르는 관상용 금붕어 정도. 밥은 자신을 경멸하는 직장 동료와 상사에게 물리적인 복수를 가하기 위해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나, 그 타이밍에 정작 권총을 발사한 사람은 밥 본인이 아닌 다른 직장동료 콜맨. 밥은 그를 제압하고 평소 흠모하던 바네사(엘리샤 커스버트)의 생명까지 구하면서 직장 내 영웅으로 떠오른다.
중반까지의 영화 구조만으로 <콰이어트맨>을 살펴본다면 <영웅본색> 중 소마(주윤발)의 “기회를 잡는 자가 신(神)이다.” 대사처럼 밥은 적시적소에서 콜맨을 제압한다. 이로 인해 비주류 소심남은 인생역전을 이룸과 동시에 불의의 사고로 지체부자유자가 된 바네사와의 헌신적인 로맨스를 달콤하게 성취한다.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처럼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부여잡은 행운아 밥의 행복 연대기가 이 영화의 전부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이 영화의 저력은 후반부 이후부터 구축되는 반전을 통해서다. 행복을 향해 차근차근 다가가던 밥에게 급작스레 다가오는 반전의 시작은 사내(社內) 정신상담소 안이다. 밥 뒤에 놓인 종이박스들이 갑자기 밥의 주위를 성벽처럼 둘러싸는 시퀀스로부터 시작되는 반전은 사실 이를 암시하는 복선이 영화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된다. 영화 후반부를 통해 드러나는 반전은 허탈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회 비주류 왕따 사나이의 심리세계를 극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관객의 뒤통수를 치기에 충분하며, 이러한 놀라운 반전을 영화 속에서 유기적으로 가능케 해주는 힘은 치밀하고 섬세한 시나리오 덕분이다. <He Was A Quiet Man>이라는 이 영화의 원제 가운데 왜 유독 시제가 현재형 is가 아닌 ‘was’가 쓰였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시길. 영화 관람 후 관객 자신의 무릎을 치게끔 하는, 이 영화 제목 자체가 복선이다. 한국 배급사가 이 영화의 원제를 고스란히 번역하지 않았음은 현명한 선택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제목을 함축적으로 대변해 준다.
바네사의 노골적인 대사와 폴라(사샤 노프)의 밥을 향한 이중적인 태도는 지금은 구하기 힘든 90년 프랑스 영화 <소파 승진>과 매치되는 부분이 있다. 그와 더불어 사내 총기 난사 시퀀스는 마이클 무어가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다룬 것처럼 총기보유의 천국 미국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우회적으로 내비친다. 비주류 소심남과 퀸카의 꿈같이 달콤한 로맨스라 생각하고 관람한다면 이 영화는 불편한 영화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밥의 시시각각 변해가는 심리상태를 영상을 따라 차분히 꿰어 맞출 수 있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반전이 충분히 납득 가능함과 더불어 - 산산 조각난 훌라 걸은 누굴 투영했었는가와 같은, 영화 속 복선들을 역추적 해보는 지적(知的) 탐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2008년 11월 26일 수요일 | 글_박정환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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