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지와 로즈는 쟈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놓인 다리다. 자본가의 시선에서는 노동자에 해당하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자본가의 편에 선 일차적 고용주다. 영화는 계약직 노동자였던 앤지가 자본의 순환 구조를 파악한 뒤 자본가의 위치를 점해가는 과정을 면밀히 살핀다. 자본가와 노동가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을 구체화시키고 그 구조적 문제를 표면으로 끌어낸다. 계약직 노동자들을 공장에 취업 알선해줌으로써 그로부터 발생하는 수수료를 얻고 계약금을 받지만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불법영업으로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고 고용보험료마저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불법적인 이익을 착취한다. 사업을 시작할 당시 겪었던 어려움은 사업의 확장을 고려할 정도로 무마된다. 나이가 서른인데 크레디트(credit)로 연명한다며 자신의 삶을 하소연하던 앤지는 어엿한 사업가로 변신하는데 성공한다. 공장에서 임금을 체불당한 이주노동자들의 성화가 자신에게 넘어오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만큼은 착실히 수행한다.
<자유로운 세계>는 결코 순탄할 수 없는 모순을 안고 있는 이 세계의 기이한 순환 구조에 의문을 던진다. 일을 해도 돈을 벌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수입은 어디로 증발한 것인가. 이 세계의 실용주의는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마치 자본의 수하로 고용 당한 듯한 인간들의 세태는 불행 속에서 쳇바퀴를 돌 듯 고단하고 피로하다. 계약직 사원에서 직업소개소의 사업가로 변신한 앤지는 고용자에서 고용주로 탈바꿈함으로써 더 많은 수익을 얻고 지위적 여유를 얻었음에도 더욱 불안감에 시달리고 각박해진다. 피라미드처럼 세워진 자본의 유통 구조에서 더 높은 자리를 점할수록 자본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결국 자본가와 노동자의 괴리감은 그 욕망의 방향성이 출구를 찾을 수 없다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돈이 지배하는 금권만능주의 시대에서 자유란 말 그대로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논하는 관념의 언어가 아니라 경쟁의 합법적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껍데기의 언어로 몰락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인색함이 속살을 드러낸다. 입 좀 닥치고 고개 숙이는 노동자들을 원하는 자본가와 일을 달라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경제적 생산성에 종속 당하고 자본의 노예가 된 현대인의 궁핍한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풍경이다.
전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영국으로부터 자유독립을 꿈꾸며 독립운동을 펼쳐나가던 아일랜드인의 내부적 갈등과 역사적 소요를 드라마틱한 연출력으로 승화시킨 켄 로치 감독은 <자유로운 세계>역시 탁월한 연출을 통해 직설적인 정치적 텍스트를 보편적인 예술적 언어로 완성시킨다. <랜드 앤 프리덤> <빵과 장미>처럼 억압당하는 피지배 계층의 정당한 의지에 대한 옹호와 지지를 보내던 그는 <자유로운 세계>를 통해 피지배자의 반대편에서 새로운 시선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그 불합리한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생시키며 부정한 가치관을 합리화시키는 세계관의 실체를 관찰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짓밟고 인간적인 윤리관보다 실리적 비윤리를 중시하는 비인간적인 현실이 어떤 구조로 정착되고 있는가를 살핀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불평등을 야기시키는 세계의 모순적 합리화는 88만원 세대의 비정규직 문제와 기륭전자의 끝없는 투쟁을 주변부에 두고서도 묵묵히 체계를 유지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려 하고 그 방식은 비윤리적인 노동 착취를 통해서 빈번하게 이뤄진다. <자유로운 세계>는 그 불평등한 자본의 논리로 착취되는 자유의 허상을 이야기한다. 대기업의 횡포와 불법적인 착취는 국가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그럴싸한 명목으로 포장되어 면죄부를 얻고 그 아래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는 정당한 노동의 의무로 몰락한다. 그것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진실이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개개인의 기이한 환상이 거대한 모순을 정상적인 것처럼 끌고 간다. 결국 모든 사람이 부자아빠가 될 수 없는, 혹은 부자아빠를 둘 수 없는 현실에서 다수는 괴롭고 일부 그 세계에서 착취에 성공한 부자아빠들과 그의 가족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조차도 더 많은 것을 차지하거나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때론 불안에 떤다. 개개인들이 자본에 의한 지배 논리를 암묵적으로 수긍하는 시스템의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그 시스템에 종속당한 대다수는 불행의 쳇바퀴를 고단하게 돌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 영화보다도 더욱 거대한 모순을 관찰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매트릭스다. 그로부터 깨어나지 않는 한 답은 없다. <자유로운 세계>는 결국 그 허세 같은 망상을 지적하는 역설의 훈계다.
2008년 9월 27일 토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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