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여 시험문제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출제자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고사]의 큰 얼개는 상당히 똑똑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 학교 속에 숨어있는 것은 분명하되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던 악인을 끄집어내고자 하는 출제자의 의도에, 영화 속에서 치러진 피의 중간고사는 더 할 나위 없이 효율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분노라는 것은 눈을 흐리게 하여 희생양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성적에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어 영화는 상당히 미숙해 보인다. [고사]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들 - 비교적 근작인 [쏘우]나 [킬위드미]까지 망라한다 - 을 영화 전편에 늘어놓는 것에 그치고 있는 듯 보인다. 늘어놓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정말 큰 문제는 자신이 가져온 영화들의 장면이라는게 어째서 그토록 인상적이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담]의 중얼귀신은 무섭지만, [고사]의 중얼귀신은 무섭지 않다. 이는 준비과정에 공을 들임으로써 한 장면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감독의 연출력이 미흡 혹은 전무했음을 나타내는 단적인 증거다. 창감독의 정신없는 컷과 컷 역시 긴장감을 자아낸다기보다는 산만함을 주는데 일조한다.
이야기도 산만하다. 산만한 이야기는 원혼의 잘못된 사용에서 비롯한다. 왜 하필 그 때서야 미치는가? 왜 하필 그 때 귀신의 꿈을 꾸는가? 등등 귀신과 관련한 모든 부분은 관객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즉, [고사]가 원혼을 다루는 방식은 진부하고 서툴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영화 속의 귀신은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나타나 분위기만 잡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 왜 이런 귀신을 보여주는 것에 집착하는가? 나는 그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원혼조차도 자신의 역할이 불만스럽지 않았을까? 사람과 귀신 사이를 오가며 관객에게 궁금증을 주고자 한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사람이면 사람, 귀신이면 귀신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진득이 밀고 가는 편이 훨씬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고사]는 흥미로운 구석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모로 부족함이 드러나는 영화다. 한국공포물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그 목마름이 [고사] 한 편만으로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더 심해지면 모를까.
2008년 7월 31일 목요일 | 글_김시광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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