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개봉해 2천만 달러 수익을 올리며 1위로 미국 박스오피스에 데뷔한 〈포비든 킹덤〉이 우리나라에는 한 주 늦은 4월 24일에 개봉한다. 물론 올 상반기 기대작인 〈다크 나이트〉〈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 왕국〉〈아이언맨〉 등의 블록버스터가 개봉하지 않은 비수기 성적이긴 하지만,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포비든 킹덤〉이 화제작인 것은 사실. 게다가 그 이유는 양국이 매우 흡사하다.
홍콩 쿵푸액션을 대표하는 두 스타 성룡과 이연걸이 만나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일단은 두 스타가 만난 최초의 영화고, 팬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영화가 많았으면 하나 쉽게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속편이 나오지 않는 한 〈포비든 킹덤〉은 성룡과 이연걸이 만난 유일한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두 쿵푸영웅,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오다
공식적으로는 1962년부터 영화에 출연한 성룡이 이름을 알린 계기는 1978년 〈취권〉〈사형도수〉가 거둔 아시아 전역을 들끓게 만든 히트다. 전무후무한 쿵푸스타 이소룡(1940 ~ 1973)의 사망 이후 공백상태에 접어든 홍콩영화계엔 ‘~룡’ 자 돌림의 이름을 걸고 후계자 임을 자처하는 권법가로 천하가 문란했으나 이를 채운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조역 출신 배우 성룡이었던 것. 실전 쿵푸의 강렬한 살기를 영화식으로 번안한 이소룡의 카리스마를 다들 2% 아쉬운 방식으로 흉내내고 있을 때 처음부터 자신만이 가능한 코미디적 요소를 섞은 쿵푸영화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영화 〈취권〉으로 성룡은 당대의 스타로 발돋음한다. 이후에 성룡이 걸은 길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다.
큰 성공을 발판으로 70년대 성룡은 고전 무협물에 코미디적인 요소를 섞은 자신의 이미지를 굳힌다. 그다지 비장하지 않은 대신 가족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당산비권〉〈소림괴초〉〈사제출마〉의 연이은 작품은 〈취권〉만큼 대형 성공을 거두지는 않았지만 밝고 경쾌한 성룡의 이미지를 아시아 전역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추석 때마다 성룡의 이름만 걸면 흥행을 보증하고, 가정 TV에는 성룡이 예전에 출연한 작품을 연휴 내내 틀어주던 성룡의 전성기 80년대가 온다. 서커스에 가까운 정교한 안무를 바탕으로 아크로바틱한 쿵푸액션을 슬랩스틱 코미디와 혼합시킨 성룡 특유의 현대극 스타일이 이 때 완성되고, 결국 아이들의 영웅이 된다. 성룡 팬이 아니라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프로젝트A〉〈폴리스스토리〉〈용형호제〉 시리즈가 이 당시 작품.
반면 전중국무술대회를 석권한 정통 무술가 출신 이연걸은 (지금도 쿵푸 연습생에게는 다시 없을 시범 비디오로 칭송 받는) 〈소림사〉 시리즈로 영화에 입문했지만, 실제 영화배우로 이름을 알린 것은 80년대 후반부터 홍콩 신무협을 이끌었던 서극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를 타이틀롤로 쓴 〈황비홍〉 삼부작과 90년대 홍콩 신무협을 대표하는 〈동방불패〉에서 주연을 꿰차며 이름을 알린 시기가 1991년이니 이연걸의 전성기는 90년대라고 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특기인 정통 쿵푸를 무기로 전설적인 무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 집중했던 90년대 중반까지 이연걸은 30년전 이소룡이 홍콩 영화계에서 가졌던 이미지와 비슷하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간다. 쑈가 아닌 실전적인 무술가며, 진지하고 강인하게 현실에 도전하는 영웅. 자신이 직접 영화 제작에 손대며 이소룡의 대표작인 〈정무문〉을 리메이크한 것은 그런 의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영웅의 다른 봉우리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홍콩 영화계가 예전과 같은 활력을 잃으며 많은 홍콩 스타가 헐리웃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다. 이미 〈캐논볼〉로 헐리웃의 쓴 맛을 본 성룡은 면밀하게 기획한 영화를 홍콩에서 만들어 헐리웃을 찾는다. 이렇게 만든 기획물 〈홍번구〉와 〈나이스가이〉가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헐리웃에 진출한 성룡은 〈러시아워〉〈상하이눈〉을 히트시키며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비슷한 시절에 헐리웃에 자리를 잡으려한 주윤발이 홍콩 느와르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해 고생을 할 때, 성룡은 아크로바틱 쿵푸액션을 슬랩스틱 코미디와 연결시킨 특유의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헐리웃에 이식한다. 홍콩 시절과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성룡은 ‘재키찬 무비’를 헐리웃 장르에 편입시키는데 성공한다. 전성기 시절 그의 영화를 즐기던 아시아 팬들에게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할 만큼 성룡의 몸은 나이를 타고 느려졌지만 오랫동안 팀워크를 맞춘 성룡의 스턴트팀 성가반이 가진 노련함이 홍콩 시절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성룡 영화만의 영역을 맞추어갔다.
정통 무술인 이미지를 살려 단번에 헐리웃 메이저 액션영화 〈리셀웨폰4〉에 출연한 이연걸은, 헐리웃에 머물기보다는 프랑스 뤽 베송 사단과 손을 잡고 B급 액션의 기수로 유럽에 자리를 잡는다. 중후장대한 헐리웃 액션이 놓친 아기자기하고 짜임새 있는 액션을 장기로 삼은 뤽 베송 사단의 소규모 액션 영화는 짭잘한 성공을 거두었고 그 사이에 〈로미오 머스트 다이〉〈키스 더 드래곤〉〈크레이들 2 그레이브〉에 출연하며 노후화한 장 끌로드 반담과 스티븐 시걸의 빈 자리를 채워간다. 영국에서 출발해 뤽 베송 사단과 손을 잡고 〈트랜스포터〉 시리즈를 통해 이연걸과 비슷한 B급 액션스타로 등극한 제이슨 스테이덤과 최근작 〈워〉에서 만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가능한 결합의 매우 작은 확률
두 스타가 자신의 영역을 키운 시간과 방식이 워낙에나 다르기 때문에 두 사람을 함께 기용한 영화가 나오는 것은 요원한 일일 수 밖에 없다. 한 쪽은 원래부터 성실하고 진지한 역할로 정통 쿵푸를 영화화한 사람이고, 다른 한 쪽은 화려한 스턴트에 아크로바틱 쿵푸를 적용한 유능한 코미디언이다. 때로 이연걸의 〈모험왕〉이나 성룡의 〈용형호제〉 시리즈처럼 〈인디아나 존스〉식 모험담을 홍콩 영화 스타일로 소화한 공통점 많은 영화가 없지는 않았지만, 두 스타의 만남을 중계할 정도의 닮음꼴은 아니었다.
봉인된 원숭이왕을 되살리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고대 중국 비슷한) 판타지 세계의 모험 〈포비든 킹덤〉은, 각각 진지한 권법승려로 이연걸을 요란한 취권으로 상대에 허를 찌르는 괴상한 무술가로 성룡을 캐스팅했다.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 차이나타운에서 가져온 황금봉 때문에 판타지 세계에서 두 무술가를 만나게 되고, 목표가 원숭이왕이라는 것부터 중국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괴이하게 각색한 〈서유기〉라는 점을 단번에 알만하다. 이렇게 괴상한 각색 정도는 되어야 두 영웅을 한꺼번에 모을 수 있는 것일까.
전성기가 훌쩍 지나 드디어 두 쿵푸영웅이 한 자리에서 만났다. 전성기 시절에 만나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인이라는 점에서, 나이를 먹고 서로에 대해 여유를 가지게 된 성숙미가 느껴진다. 헐리웃에서 각색한 괴상한 〈서유기〉 〈포비든 킹덤〉에서 마주하기 힘든 두 사람의 만남을 확인해 볼 일이다.
2008년 4월 25일 금요일 |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