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감독 롭 라이너)는 죽음을 앞둔 두 노년 남자들의 여행을 그린 로드무비다. 프랑스, 이집트 피라미드, 중국 만리장성 등 세계 일주이기도 하면서 삶에 대한 여행이기도 하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놓지 않은 희망, 평생을 살아오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 그리고 마지막 여행을 함께 하게 된 두 남자의 우정. 영화는 담담하면서도 때때로 유쾌하게 두 남자의 시한부 삶을 그려나간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도 끝까지 마음을 끄는 매력이 숨겨진 영화다.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은 그들의 출연만으로 영화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배우들이다. 그런 두 배우가 만났으니 그 자체만으로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죽어가는 노인들이라는 역할을 부담 없이 지켜볼 수 있는 것, 두 배우가 연기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나이에 맞는 배역이기에 더 자연스러웠다. 자신을 위한 삶 보다는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자동차 정비사 카터(모건 프리먼)와 가족이라고는 애완견 두 마리가 전부인 애드워드(잭 니콜슨)는 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 받으면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서로 친구가 된다.
삶을 마무리 하는 순간에 서로 생각이 비슷한 친구를 만난다는 것, 삶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리라. 카터는 인간적인 따뜻한 면을 애드워드는 꿈을 실현시킬 돈을 선물한다. 잭 니콜슨이 연기한 애드워드는 전작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연기했던 까탈스럽고 이기적인 멜빈 유달의 연장선상에 있다. 때문에 모건 프리먼과 서로 역할이 바뀌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혹여나 자신이 살 수 있는 가망이 있다면 이런 걸 해봐야겠다고 낙서처럼 적던 게 화근이 되어 카터와 애드워드는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두 사람은 그간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 하나씩 지워가며 남은여생을 즐긴다.
대학 철학시간에 숙제로 나왔던 게 바로 버킷 리스트다. 자기가 해보고 싶은 리스트 적는 것. 젊었을 때는 '떼돈을 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다' 등 좀 거창했던 꿈들. 죽음을 앞둔 지금은 '모르는 사람 돕기', '눈물 날 때까지 웃기' 등 한마디로 사소해졌다. 애드워드 역시 '스카이다이빙', '문신',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등 억만장자와는 좀 동떨어진 소원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이뤄나가면서 아이처럼 재미있어 하는 모습 등은 사실 억만장자이기에 가능한 것들로 채워져 있어 이질감을 주기도 한다. 오죽하면 동행자인 카터가 "도대체 자네 재산이 얼마야?"라고 묻곤 하겠는가.
그들만의 해방구는 활기차고 즐겁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와는 다른 일탈과 질주다. 늘 지켜주고 싶었던 애드워드의 딸 문제로 두 남자의 여행은 끝난다. 또 딸에게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는 애드워드의 과민반응으로 카터는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간다. 애드워드 역시 쓸쓸히 인스턴트식품을 꺼내 먹는 외로운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이렇게 두 노인을 통해 살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조용히 묻는다. 카터와 아내의 경이로운 사랑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죽음이라는 지점을 향해 가기에 담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의 위안이 되는 영화다. 더 늦기 전에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하나씩 지워 보자.
2008년 4월 4일 금요일 | 글_김용필 객원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