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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평가! 오독과 오역의 무리수를 두다.
삼국지: 용의 부활 | 2008년 3월 26일 수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이라고도 불리는 상산 조자룡은 창술의 달인이자 유비 현덕의 의형제 관우 운장, 연인 장비와 함께 유비 현덕을 가까이 보필하고 후에 유비가 건립한 촉나라의 오호장군에 오르기도 하는 용장으로 그려진다. 장판파에서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했던 그는 후에 장강에서 오나라 군사로부터 한번 더 아두를 구해오기도 한다. <삼국지: 용의 부활>(이하, <용의 부활>)은 소설 ‘삼국지’가 충직한 용장으로 그리는 조운, 상산 조자룡(유덕화)을 중심으로 개작된 ‘삼국지’라고 할 수 있다.

<용의 부활>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필자에 의해 번역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하되 영화적 허구를 노골적으로 숨기지 않는다. 유비가 제갈공명에게 삼고초려를 하며 천하삼분의 계를 얻기 이전에 이미 유비는 조운을 가까이 두었다. 또한 장판파에서 조자룡이 아두를 구하기 전, 조조의 군대를 이끌고 온 하후돈과 대적하게 된 박망파 전투에서 하후돈의 군사를 화공으로 괴멸시키기 위한 유인책에 제갈량은 조운을 이미 중용하기도 했다. 그런 조자룡을 제갈량의 얼굴도 잘 몰랐으며 장판파에서 아두를 구하기 직전에 유비와 처음 대면하는 평범한 병사로 그린 <용의 부활>은 ‘삼국지연의’의 서사를 일부 묵과하고 재편하는 것과 같다.

물론 <용의 부활>에서 상세하게 묘사되는 전후반의 전투는 엄연히 소설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조자룡의 활약을 그리는 전후 두 번의 전투 중 전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삼국지연의’ 중, 조운이 혈혈단신으로 아두를 구출한 장판파 전투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허구가 많이 포함된 후자는 유비와 조조의 사후, 뒤를 이은 촉의 황제 유선을 모시던 제갈공명이 출사표를 던지고 조조의 뒤를 이은 조예의 위나라로 북벌을 결행한 이후, 두 나라의 군대가 처음으로 맞붙은 봉명산에서 선봉에 선 조자룡이 그에 맞선 한덕과 그의 네 아들간의 전투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용의 부활>은 이에 조영(매기 큐)이라는 조조의 손녀를 가상인물로 내세우며 조자룡의 비범한 최후를 그린다.

장대한 서사와 함께 각양각색의 개성을 지닌 캐릭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삼국지’는 현대에도 다양한 해석과 감상을 부른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무엇보다도 <용의 부활>은 ‘삼국지’를 토대로 한 영화화 자체란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지금까지 그 장대한 스케일 덕분에 섣불리 시도되지 못했던 ‘삼국지’의 영화화 작업이 무르익은 기술력과 연출력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건 분명 매력적이다. 물론 ‘삼국지’의 전사를 영화화한다는 건 상당히 무리한 일이다. <용의 부활>이 조자룡이란 인물을 중점으로 ‘삼국지’를 재편했다는 건 결국 이 장편 서사를 스크린에 옮길 수 없다면 그 일부를 극대화시키는 방편으로 영화화시킬 수 있음을 입증하는 바와 같다. –이는 현재 오우삼의 <적벽>이 인상적인 일부의 서사를 영화화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소설에서의 관계 구조를 염두에 두지 않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을 삽입하기까지 하며 사건 자체를 자기 방식으로 재편하는 건 신화적인 영웅들의 이야기인 삼국지 안에서도 조자룡이라는 인물을 극대화시키려는 수단의 방편처럼 보인다. ‘운명은 사람 손에 달려 있다’는 그의 되뇜처럼 <용의 부활>에서 묘사되는 조자룡은 ‘삼국지’ 안의 영웅 조자룡에서 발췌한 인간적 면모의 부각이라고 해석된다. 결국 <용의 부활>은 조자룡의 백전백승 일대기보다도 백전노장의 가공된 실패담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우고 동시에 영웅이라 불리는 자가 짊어져야 하는 숙명 같은 고뇌를 관객에게 짊어주려는 듯 보인다.

결국 <용의 부활>에서 조자룡은 우리가 아는 삼국지에서의 이름으로 대변되는 고유명사라기보단 ‘영웅’이라는 고유명사에 가깝다. 나안평(홍금보)이라는 가상인물을 관찰자이자 화자로 삽입하며 영웅이 될 수 없는 자의 비애를 조명하는 건 이를 대비시킴으로서 영웅의 고뇌를 부각시키려는 수단으로 보인다. 하지만 <용의 부활>은 이런 의도를 이해시킬 뿐,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삼국지’라는 가상적 원형에 굳이 변주를 넣어가며, 그것도 다소 격에 맞지 않는 여성캐릭터를 배치하면서까지 어떤 구색을 맞추려는 설정은 너무나도 뻔해 보인다. 정사도 아니고 연의도 아닌 ‘삼국지’의 영화적 변주는 그것이 원작과 달라져야 할 합당한 근거를 명석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결국 이는 원판을 잘 숙지한 이들에겐 오독(誤讀)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오역(誤譯)이 될 우려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무예의 현신들이 구체적인 상으로 등장하는 ‘삼국지’는 그 세계관을 스크린에 전시한다는 것 만으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매력을 반감시키는 건 애매모호한 영화의 성취다. 커다란 스펙트럼을 지닌 영웅의 면모에서 인간을 발췌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용의 부활>은 커다란 가능성을 미약한 성과로 깎아 내렸다. 그저 ‘삼국지’라는 소설의 판본을 영화적으로 시도해봤다는 것 이상의 가치가 <용의 부활>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원본을 훼손하는 방식의 무리수를 두고도 탁월한 성과로 거듭나지 못했다는 건 여러 가지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유덕화의 관록이 조자룡의 위엄을 잘 살리고 있다는 점은 일말의 위안이다. 하지만 그를 보좌하는 가상의 캐릭터, 조영과 나안평은 자신을 잉태한 영화의 모성애를 전혀 얻지 못한 채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앙상하게 목숨을 부지하다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어떤 인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2008년 3월 26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오랜 역사로 증명되는 스테디 베스트 셀러 '삼국지' 드디어 스크린에서 빛을 보다!
-조자룡의 관록에 걸맞은 유덕화의 호연, 반가운 홍금보, 섹시한 무사 매기 큐.
-원작을 바탕으로 가상을 덧붙인 21세기 스크린판 삼국지연의. 조자룡으로 첫수를 두다.
-삼국지를 달달 외는 당신이라면 원판을 훼손한 영화가 달갑지 않을지도.
-이인항 감독의 전작들을 근거로 보면 이 영화에도 큰 믿음이 가지 않는다.
-조자룡을 이야기한다지만 다른 캐릭터들은 너무 안습아냐? 그래도 명색이 삼국지인데...
-오우삼의 <적벽>이 정말 기대된다.
21 )
drjed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이 없는건가?   
2008-03-27 22:42
lolekve
헐^^;;   
2008-03-27 20:40
lalf85
조자룡은 영웅이다! ㅋㅋ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만 읽지 말고 진짜 원작을 읽어보시길~   
2008-03-27 12:52
ldk209
별로인가보네...   
2008-03-26 21:19
ehgmlrj
대박나시길~~!!   
2008-03-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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