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이 깔리고 적막감마저 감도는 부산 초량동의 부산항 제2부두.
비취색 바다만이 잔잔하게 출렁이는 한적한 부두에 두 남자가 맞대고 섰다. 시선을 모으는 백발에 자체 발광하는 은색 정장을 입고 짐짓 여유롭게 웃어대는 ‘백반장’ 한석규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색으로 통일해 그야 말로 ‘간지 작살’인 ‘안현민’ 차승원. 대조적인 두 남자의 대거리가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최고의 남자 배우 두 사람이 마주 선 것 자체로 그림이요, 이 팽팽한 맞대결의 사연 또한 궁금해지는 이 곳은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막바지 촬영 현장이다.
“한석규에 차승원이라니 기대되지 않아?”, “둘 다 이번엔 흥행 좀 해야지. 근데 감독이 중간에 교체됐다며?”, “<우리 형> 안권태 감독에서 곽경택 감독으로 교체됐다나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근데 이 영화 코미디는 아닌 거지?” 따뜻한 남쪽나라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 80명에 가까운 취재진이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궁금증을 토해낸다. 한석규, 차승원의 맞대결만으로 2008년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선수들에게나 관객들에게 입질을 당기는 ‘물건’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사랑>으로 추석 극장가를 호령했던 곽경택 감독이 메가폰을 이어받았기에 궁금증이 배가되는 것인 당연지사다.
검거율 100%를 자랑하는 형사 반장과 ‘괴도 루팡’을 연상시키는 천재적인 지능범의 두뇌게임. 그리고 이 맞대결의 연원인 복수! 복수! 한석규와 차승원이 이구동성으로 “스타일리쉬하고 비주얼에 대한 갈증을 채워줄 장르 영화”라고 소개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이처럼 두 남자의 대결구도를 전면에 내세운 도시적 감성의 형사 액션물이다. 대략의 얼개는 이렇다. 18억원을 이송 중이던 현금수송차령도 모자라 제주 공항에 도착한 100억 상당의 금괴 600kg을 탈취한 안현민은 백반장의 신분을 도용하는 대담함을 선보이며 게임을 걸어온다. 한석규가 “담배를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요점 정리한 백반장은 형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피로에 찌든 백전노장 형사. “당신, 나 잘 알지?”라고 거침없이 전화를 걸어오는 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용의자가 나타나자 백반장은 다시 한번 형사로서의 동물적인 감각을 발동시키게 된다.
이날 촬영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두 남자가 제대로 맞붙는 첫 번째 신. 영화 속에서 각기 형사팀과 범인팀으로 나뉘어 활약하고 또한 촬영도 그렇게 진행되었기에 한석규와 차승원이 이렇게 오랜 시간 카메라 앞에 함께 서는 것은 처음이라고. 조소어린 비웃음과 승리를 확신한 미소를 날리며 “뭐야, 재미없게 자수하는 거야”라며 여유를 보이는 ‘백반장’ 한석규와 대조적으로 항복의 표시로 권총을 내던지며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인 메모리 칩을 건네는 ‘안현민’ 차성원의 표정이 다소 경직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걸 제외하고 첫 번째 대결이라는 점에서 한석규와 차승원 모두 연기에 대한 집중도가 한껏 고조되어 있다. 특히 4~5번의 리허설과 테스트를 거쳐 OK가 나자 자신의 연기를 확인하는 차승원의 눈빛이 과연 그가 코미디로 일가를 이룬 배우 맞나 싶을 정도다. CF보다 더 멋들어지게 “레디 앤 액션”을 외치는 곽경택 감독 또한 취재진의 장벽을 넘어 배우들과 모니터 사이를 오락가락하느라 분주하다. 뒤늦게 합류한 곽경택 감독은 이번 클라이맥스 신 3일만을 남겨둔 터라 마음이 급할 만도 한데 모니터로 보이는 취재진을 보고 “저기 누구 출연하셨다”라고 농담을 건넬 정도로 대작을 연출해 본 감독만이 취할 수 있는 여유를 자랑한다.
사실 출발은 <우리 형>을 연출한 안권태 감독의 몫이었다. 하지만 70% 가량 촬영이 진행 된 뒤 우여곡절 끝에 안권태 감독의 사수 곽경택 감독이 메가폰을 이어받았다. “진행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솔직히 <친구> 연출부였고 내가 데뷔 시킨 안권태 감독에게 아직은 손에 들어가는 사이즈의 영화를 해라라고 충고했었다”는 곽경택 감독은 “내가 <닥터K>를 연출하고 인터뷰가 한 건도 안 들어왔는데 그 때 생각이 나더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기본적으로 많은 경험이 있어야지 해 낼 수 있는 영화다. 깔끔하게 마무리하자는 마음 밖에 없고 한석규의 표현대로 도시적인 장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산달이 가까운 아기가 거꾸로 들어섰는데 좋은 의료진이 붙어 다행이다”라는 차승원의 비유가 재미있다. 덧붙여 <태풍>에서 이미 곽경택 감독과 호흡을 맞춘 홍경표 촬영감독의 합류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 포인트다.
이래저래 잡음이 들렸던 것도 사실이지만 배우들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그대로다. 백발이라는 외형은 물론 <텔 미 섬씽> <주홍 글씨>와 다르게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고 센 인물로 멜로 이미지를 벗고자 하는” 한석규나 “패셔너블하기에 비주얼에 대한 갈증이 높았다”는 차승원 모두에게 캐릭터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욕구가 딱 맞아떨어졌다. 덧붙여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안현민이 벌이는 비리사업가 김현태(송영창)에 대한 복수가 관객들의 감정선을 자극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물론 50억을 상회하는 제작비를 들여 서울, 부산, 제주 등 전국 규모의 로케이션과 공항, 항구를 잇는 스케일, 카체이스 신을 비롯한 볼거리가 블록버스터로서의 면모를 과시할 예정이다. 두 호감배우의 맞대결, 곽경택, 홍경표 콤비의 재결합, 도시 스릴러와 복수극의 접합 등 흥미 요소로 가득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오는 3월,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2008년 1월 11일 금요일 | 부산_하성태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