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 국한되지 않고 작품 자체로 신화적 반열에 오른 <에반게리온>에 담긴 상징과 은유의 메커니즘을 구구절절이 해석하거나 번역하려는 욕망은 자제해야 할 것 같다. 이미 원작자인 안노 히데야키를 질식시킬 정도로 수많은 해석들이 웹상에 난무하는 상황에서 신극장판이라는 전제하에 놓인 새로운 <에반게리온>이 원전의 새로운 분신임을 해명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에반게리온: 서(序)>(이하, <서>)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이 제각각 취했던 어떤 태도를 불문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마침표를 찍었던 복음-Euaggelion-의 새로운 첫 구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사실 <서>는 새롭게 재편될 시리즈의 서장이자 기존의 신화를 재배열하고 되짚는 프롤로그에 가깝다. 하지만 존재하는 이야기를 재편하여 서사의 원형이 지니고 있었을 열광의 발자취를 답습하겠다는 욕심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서> 혹은 그와 함께 완성될 네 편의 새로운 시리즈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안노 히데야키가 미처 남기지 못했던 에필로그일 수도 있고, 혹은 기존의 에필로그를 이별로서 납득할 수 없었던 오타쿠(お宅)에게 남기는 유언장이 될 수도 있다. 편집증 환자처럼 촘촘하면서도 지독한 수집가의 집착처럼 방대하게 쌓아 올린 복음의 제단은 여전히 과도하게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서>는 그 제단을 경배하기 위한 파괴의 전조를 드러낸다. 존재하던 것들을 새롭게 엮어낸 <서>는 기존의 서사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즉 새로운 정립의 작업(rebuild)이다. 이는 결국 뒤이어 등장할 <에반게리온: 파(破)>가 보여줄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특히나 <서>의 결말부에 등장하는 유카리의 모습은 새로운 <에반게리온>이 예상할 수 있는 궤도에 오차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어쨌든 <서>는 새로운 시리즈의 첫 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시대적 기술의 변화에 따라 한층 강화된 시각적 구현은 그 경이로운 세계관만큼이나 탐닉하고 싶은 시각적 욕구의 진화까지 따라잡았다. 특히나 극의 후반부, 다섯 번째 사도와 벌이는 전투 ‘야시마 작전’씬은 스펙타클의 경지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통해 묘사된 모빌 슈트 로봇의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에반게리온’의 디테일한 형체는 기존의 것임을 알면서도 경이롭게 느껴진다. 또한 마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변화하는 도시, ‘제3신도쿄’의 위용도 대단하다. 2D와 3D가 절묘하게 접합을 이루는 비주얼의 성과는 디테일하면서도 감성적인 터치를 망각하지 않았다.
신화가 된 소년의 고뇌. 과학과 신앙이 기이하게 뭉뚱그려진 이상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육체를 볼모로 세계를 구원해야 할 의무에 탑승해버린 소년 신지는 끝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내던진다. ‘난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끝없이 밀려드는 사도의 절대적 능력 앞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소년의 유약함처럼 가냘픈 에바 초호기의 형상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심약한 소년의 고독한 정서는 펄프와 신경 회로로 가득 찬 초호기의 몸뚱이와 일체화되며 극복과 좌절의 어지러움이 교차하는 구체적인 성장통을 그려낸다. 그리고 <서>는 자신의 존재를 납득할 수 없어도 숙명을 받아들이는 소년의 첫 번째 관문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렇게 잔혹한 천사의 테제(殘酷な 天使の テゼ ) 안에서 소년은 신화가 되어 다시 한번 침전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 복음를 경배하던 오타쿠들은 다시 한번 새로운 복음의 전도에 전율할 채비를 갖추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이미 <에반게리온>에 대해서 알만큼 아는 당신은 이미 이렇게 외치고 있을지 모르겠다. 오라! 달콤한 복음이여!(Komm, sosser evangelium!)-에반게리온 구(舊)극장판 엔딩 테마인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Komm, sosser tod!)'를 인용했음-
Tip_그대가 만약 엔딩과 함께 흐르는 우타다 히카루의 ‘Beautiful World’를 인내심 있게 감청하고자 한다면 그 말미에 존재할 깜짝 선물을 얻을 수 있을 것. 특히나 당신이 에반게리온을 숭배하는 진정한 오타쿠라고 자부하는 이라면 그것마저 놓쳐서는 안될 것이라 사유됨.
2008년 1월 9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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