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응용연구소가 2007년 '올해를 빛낸 치유적인 영화(Healing Cinema) 베스트 10'을 선정해 발표했다.
한국영상응용연구소(KIFA, 대표 심영섭)는 최근 새로운 예술치료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영화 치료와 프로그램 및 영상물을 활용한 교육 및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기관으로,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국내 개봉작들을 대상으로 심영섭, 이동진, 김준형, 남완석 등의 심사위원들이 선정해 발표한다.
이번에 발표된 올해의 힐링 시네마에는 <경의선>, <밀양> 등 한국영화 2편과 <레인 오버 미>, <미스 리틀 선샤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 <씨 인사이드>, <어거스트 러쉬>, <준벅>, <타인의 삶>, <포 미니츠> 등 외국영화 8편이다.
<밀양>의 선정이유에 대해 '부흥회식 구원주의에 매몰되지 아니하고 리얼리즘이란 강박에 포획되지 않은 채, 이창동 감독은 더 본질적인 것, 더 근원적인 것으로 깊숙이 내려간다. 역사적 관점을 지녔던 <초록 물고기>나 <박하사탕>과 달리, <오아시스>는 육체의 장애에 관한 것이고 <밀양>은 마음의 장애에 관한 영화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이야기이자, 구원과 용서에 대한 감독의 내밀한 고백'이라고 설명했다.
<레인 오버 미>에 대해서는 '9.11. 테러로 아내와 아이들, 키우던 강아지마저 모두 잃은 남자는, 지나가는 세퍼드만 보아도 푸들 생각난다고 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막다른 길에서 삶의 이유를 대답해주는. 덥수룩한 수염과 물기어린 아담 샌들러의 두 눈 속에 강렬한 치유의 힘이 녹아 들어가 있다. 백번의 따뜻한 프리허그를 받는 그 느낌'이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그외 나머지 영화들의 선정이유는 다음과 같다.
<경의선>
느리게, 상처를 핥아 주는 기차는 짐승의 혀를 갖고 있는가. 만남과 헤어짐의 가변 차선은 담담히 남녀의 과거를 실어 나르고, 소통이란 교집합을 꿈꿀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경의선은 조용하지만 부드러운 위무의 힘을 발휘한다.
<미스 리틀 선샤인>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물질적 갈급함으로 서로 다른 욕망을 꿈꾸는 가족 구성원들이 노란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토드 솔론즈나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 같은 시디신 맛을 잃지 않았지만, 보고 나면 왠지 마음 한쪽이 아프면서 아늑해진다. 가쁜 호흡으로 번지수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한 줄기 햇살을 선명하게 드리우는, 구겨진 생을 다림질하는 깨끗한 따뜻함.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이번엔 헐리우드 풍의 타임 머신이 아니라 몸에 새겨지는 시간여행이다. 우리의 주인공 마코토는 달리고 또 달린다. ‘그때 그곳에서 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혹은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라는 식상한 질문 위로.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성장영화이자 SF 영화로, 일상을 감싸안는 자기 긍정의 힘이 싱싱하게 푸르다.
<씨 인사이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안락사를 위해 투쟁하는 한 인간의 영혼 속에는 자유 의지에 대한 긴 물음표가 숨겨져 있다.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선택한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자, 먼저 자신의 가슴에 돌을 들지어다. 하비에르 바르뎀의 대사처럼 영화를 보고 나면, '웃음으로 운다' 혹은 '울음으로 웃는다'
<어거스트 러쉬>
엄마 찾아 삼만리, 올리버 트위스트, 아마데우스 의 삼종 결정체. 음악은 더 없이 아름답고 쉬운 신파지만, 쉬운 감동을 준다.
<준벅>
감독 필 모리슨은 다양한 은유들로 그늘 한점 없는 남부의 햇볕에 섬세하게 한 가족의 그림자를 새겨 둔다. 반면 영화속 아웃 사이더 화가 데이비드 워커의 작품은 그지 없이 생생하고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남부의 보수적 가정에 깃든 숨겨진 심리적 풍광을 절묘한 캐릭터와 대사로 음미하는 동시에, 당신의 지적 능력과 문화적 감수성 지수 모두를 측정할 수 있는 보기 드문 독립 영화.
<타인의 삶>
세상에는 착한 관음증도 있다. 차가운 냉장고 같은 주인공의 삶에 감성과 지성, 순수한 열정, 사랑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품성들이 흘러 들어온다. <타인의 삶>은 그것이 비록 관음증이란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더라도, 인간의 교류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일방향이 될 수 없다고 속삭인다.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훔쳐보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앞지를 때, 인간은 그토록 변화하는 것이다. 마치 사랑의 감정이 그러하듯.
<포 미니츠>
도발의 4분, 절정의 4분을 향해 건반아 마음아 모두 내어 달려라. 상처받은 두 여자의 호흡이 포개어 지는 지점에, 당신의 심장도 함께 얹을 수 있다. 모차르트도, 베토벤도, 슈만도 다 좋아지고. 단연 돋보이는 올 해의 독일 영화 또는 상하기 쉬운 영혼들의 감정적 연탄곡.
2007년 12월 27일 목요일 | 글_한대수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