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갈까. 밖에 있을 땐 1, 2년 금방 갔는데.’ 만약 그대가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이 대사를 통해 그 시절을 다시 체감할 것이다. <기다리다 미쳐>는 2년 여의 시간을 국가에 헌납한 어떤 젊은이들의 시절, 즉 군대에 얽힌 사연담이다. 하지만 기다리다 미치는 건 비단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군화를 신게 된 남자 옆에서 고무신, 요즘 말로 곰신을 신게 된다는 여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입영장의 분위기가 그토록 서글픈 것도 2년이란 시간의 체감지수가 너무나도 막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다리다 미쳐>는 제대를 기다리는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기다리는 네 명의 여성의 사연을 엮어 넣은 옴니버스다. 연상연하이거나 동갑내기거나, 순수한 짝사랑이거나 볼 것 없는 동거인이거나. 입대를 앞둔 연병장의 표정은 하나같이 울음바다가 되거나 쓸쓸하다. 하지만 <기다리다 미쳐>에서 생략된 주어는 입대하는 남자들보단 그들을 기다려야 하는 여자들을 위한 자리인 것 같다. 카메라는 종종 부대의 울타리를 넘어 그들의 삶을 비추지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그들의 공백을 견뎌내는 그녀들의 삶이다. 결국 <기다리다 미쳐>는 입대와 제대라는 2년의 간격을 사이에 둔 여성들의 성장기인 셈이다.
사실 남북분단이래로 이 땅의 젊은이들이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가 된 군대는 앞으로도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대한민국 토종 트렌드일 것이다. <기다리다 미쳐>는 그 트렌드에 로맨틱의 화법을 가미하고 다양한 시선을 배치하며 버라이어티한 보편성을 획득한다. 군대라는 문화의 사회적 특이성보다도 남자와 여자라는 심리적 접근성에 친숙한 <기다리다 미쳐>는 특이 소재를 장르적으로 소화한 무난한 로맨틱 코미디의 완성도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쏠쏠한 재미를 부여한다. 또한 세상에서 제일 꼬시기 쉬운 사람은 군인과 남자친구 군대 보낸 여자란 대사는 군대란 시기는 남녀의 사랑에 생채기를 내기 쉬운 계절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다리다 미쳐>는 그 시절의 한파를 이겨내거나 혹은 새로운 봄의 도래를 찾아가는, 혹은 잠시 뜨거운 볕으로 한눈을 팔거나 조심스럽게 남자의 쓸쓸함에 어깨를 기대보는 여성들의 사연을 버무리며 옴니버스의 공식을 나름의 방식으로 매듭짓는다.
<기다리다 미쳐>는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특이성을 잘 살린 트렌디한 기획으로서의 장점을 잘 살렸으며 동시에 그 특수성의 그릇에 보편성의 정서를 잘 담아낸 사례로서 유용하다. 군대라는 2년여의 기다림이 비단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것을 공유하는 여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은 남자만이 아닌 여자도 성숙시킴을 각양각색의 모습을 통해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기다리다 미쳐>는 적절한 미덕을 지닌다. 결국 기다리다 미칠 것 같은 2년의 시간은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었음을, 또한 그것이 비단 나쁜 추억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군대란 폐쇄적 사회를 미화하고 옹호하는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통과 의례와도 같은 기다림의 시간을 성숙의 과정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기다리다 미쳐>는 그 나름의 방식을 수긍하게 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 놓인 기다림을 묵묵히 응시하고 그 위에 놓인 군상들의 다양한 경험을 삶의 표정으로 체화하는 젊은 날의 로맨스는 그렇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이별도 재회도 하나같이 젊은 날의 통과의례처럼 그와 그녀들을 성장시킬 뿐이다. 게다가 군대와 밀접한 사연을 지닌 남녀라면 <기다리다 미쳐>에 남다른 애정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2007년 12월 24일 월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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