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데 이 부부는 진검승부를, 아니 사생결단을 낸다. <싸움>이란 단도직입적인 제목과 달리 불화의 역경을 이겨낸 커플의 반전 닭살 프로포즈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그 직후, 적막한 남녀의 공간에서 드러나는 이별의 징후를 대칭시킨다. 너 없이는 죽을 것 같다는 커플의 눈물겨운 고백은 백년가약의 파기를 거치고 나서야 미친 짓이란 후회를 거듭한다. 사실 법적 부부의 효력이 다한 뒤에서야 이뤄지는 그 싸움이 부부의 것이라고 하긴 묘연하다. 결국 그네들은 진저리 나게 싸운 뒤에 이혼한 남녀가 아니라 어물쩡하게 이혼한 후, 뒤늦게야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그들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하다. 결국 그 싸움의 실체는 증오가 아니라 애증이며, 애증은 곧 사랑이라는 감정의 또 다른 형태다. 전투적 모드로 확인되는 감정의 실체, <싸움>의 실체는 곧 잔존한 감정의 희미한 육체를 다시 끌어내 꼬집어보는 행위다. 동시에 이는 법적 구속 유무와 무관하게 잔존한 감정의 실체를 다시 매만지는 작업이다. 물론 그것이 부드러운 손길이 아닌 꽉 쥐어진 주먹이기에 <싸움>이란 기묘한 제목이 온전할 수 있다.
<연애시대>를 통해 남녀의 감정적 기류를 세심하게 이끌어낸 한지승 감독의 <싸움>은 과격한 제목과 달리 전작의 숨결이 많이 투영된 작품이다. 과격한 액션의 찰나와 대비되는 남녀의 감정적 질감이 대비적으로 드러나는 남녀에 대한 시선 구도는 제목과 달리 세심한 감수성을 느끼게 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남자,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여자의 개별적인 심리적 지층을 발굴하고 그 감정의 구조적 차이를 관찰한다. 하지만 제목 그대로 <싸움>은 그 구조적 차이로 인해 역지층처럼 퇴적된 갈등의 균열로부터 발생하는 과격한 흔들림을 과격하게 끌어낸다. 애증으로 겹겹이 쌓인 위태로운 감정이 무너지는 순간, 남녀의 이성은 살의로 변모한다. 그 살의는 피 튀기는 육박전을 불사하고 불꽃 튀는 카체이싱까지 연출한다. 이는 동시에 설경구와 김태희라는 역설적인 캐스팅의 묘미를 캐릭터에 담아낸 후광까지 동반하며 기묘한 흥미를 돋운다.
하지만 돌격과 휴식을 반복하듯 과격한 애정전선의 활기와 적막한 개인적 쓸쓸함을 순차적으로 배치하는 <싸움>의 감정 기복은 이야기 전개의 숨통이 막히듯 유기적이지 못하다. 물론 그것이 여전히 감정의 불씨를 남기고 있는 남녀의 미련에서 비롯되는 일상의 고독이라고 해석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성보단 감성으로 느껴져야 할 씬의 맥락이 해석적으로 풀이되는 건 그 감정의 기복이 다소 리듬감 없는 맥박을 유지하는 덕분이다. 물론 단순히 개별적인 에피소드적인 맥락으로 감상하자면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만끽할 수도 있겠지만 순차적으로 거듭되는 감정의 조울증을 막연히 이해하기엔 배려가 필요하다.
결벽증과 편집증을 동반한 극단적인 소심남 김상민 역을 맡은 설경구와 까칠하고 과격한 행동 본능을 표출하는 윤진아 역의 김태희는 배우의 기존 이미지가 캐릭터를 통해 역전됐을 때 어떠한 재미를 발생시키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처럼 보인다. 나사 하나 풀린 듯한 애드립을 연발하며 희희낙락하듯 촬영에 임한 듯한 설경구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맘 편히 따라붙은 듯한 김태희의 새로운 연기적 시도(?)는 캐릭터적으로 만족스럽다. 다만 <중천>에서 불거졌던 모호했던 연기력 논란은 <싸움>을 통해 명백해 보인다. 캐릭터의 모호함으로 인해 연기력을 평가하기에 석연치 않았던 <중천>에 비해 <싸움>은 김태희라는 배우의 연기적 공백을 명확히 드러낸다. 그것은 기교가 아닌 기본적인 숙련의 문제였음을, 하이톤으로 갈수록 뭉개지는 발성과 종종 일관된 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깊이 없는 표정의 문제였음이 명백히 드러나는 것만 같다. 이는 훈련과 경험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자질이란 점에서 배우의 의지에 따른 발전적 예감이자 극복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싸움>은 김태희라는 배우의 다음 행보에 따라 좋은 계기가 되어줄 만한 자산적 경험이란 점에서 긍정적이다. 조연들의 활약은 주연들이 채우지 못하는 소소한 재미를 메운다. 특히나 무대에서 다져진 전수경의 녹록하지 않은 연기는 만만치 않은 재미를 주며 서태화의 엉뚱한 캐릭터 역시도 묘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게다가 극 말미에 중요한 계기를 만드는 임하룡과 노영심의 카메오 출연은 별미다.
사실 <싸움>은 과격한 히스테리의 표출보다도 그 히스테리를 방출하게 되기까지 엇갈린 감정의 사연과 그 끝에 묻어나는 진심에 방점을 찍고자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극악한 상태로 치닫는 남녀의 싸움이 한쪽의 끝을 보겠다는 '장미의 전쟁'으로 치닫게 되기 전에 자꾸만 멈칫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싸움>은 죽 끓듯 하는 감정의 변덕을 극단적으로 전시할 뿐, 그 절실함에 도달하지 못한다. 낮게 깔린 카메라의 구도를 통해 드넓은 공간의 너비를 드러내고 사물 혹은 인물간의 배치를 평면처럼 구성하며 배경 속에 튀는 인물의 상을 짚어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모난 감정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적막한 심정을 전시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깊이를 담아내기 전에 전시하기 급급한 <싸움>은 결국 겉과 속이 다른 의도의 결과만 확인시켜준다. 다만 순간마다의 재기발랄함 혹은 캐릭터의 조합을 통한 에피소드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면 그 방면에서의 쏠쏠한 재미는 만끽할만하다. 어찌됐건 싸움 구경은 재미있는 법이니까.
노골적인 상품의 로고를 특정 광고로 취하는 후반부의 풍경은 어떤 면에서 현실적인 브랜드 네임을 영화적으로 활용하는 것 자체가 현실감을 부여하는 미장센의 일환이 될 수 있음을 피력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불순한 상업적 의도를 머금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기란 역시나 쉽지 않을 것 같다. 그건 마치 <싸움>의 감정이 현실과 비현실의 상을 오가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모호한 맥락이다.
2007년 12월 7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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