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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 그리고 ‘산으로 간 기업윤리’를 다루는 스릴러. <마이클 클레이튼>
2007년 11월 27일 화요일 | 이지선 영화칼럼니스트 이메일


욕망에 귀 기울일 것. 타인의 고통은 외면할 것. 사회적 정의 따위는 과감히 무시할 것. 조직의 안위를 위해 불의를 요구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 그것이 이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총력투쟁의 시대, 거대한 조직사회에서 살아남는 생존의 조건, 출세의 조건, 성공의 조건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저 과감해질 필요가 있을 뿐이다.

그러고 나면 행복해지느냐고? 물론 그럴 리는 없다. 본래 욕망은 행복이나 만족과는 거리가 먼 단어, 시작부터 그 질문은 완전히 틀렸다. 자본이 끊임없이 번식해가듯, 욕망은 그저 번식하고 증가할 뿐이다.

초일류 국가대표 범죄집단?!

그리하여 욕망이 넘치는 세상에서, 욕망으로 가득 찬 인물들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동안 약한 자들은 스러지고 밟히고 지워진다. 도덕이나 윤리는 멀찍이 내팽개쳐진지 오래다. 사람들은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라고 강변하며 너도 나도 성공을 위해 질주한다. ‘오바’라고? 그럴 리가! 당신이 발을 딛고 있는 이 나라가 바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잖은가.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뇌물공여, 탈세, 탈루, 그리고 편법상속을 통한 배임행위를 버젓이 자행한 기업이 ‘국가대표급 글로벌 기업’으로 칭송받는 땅이다. 다들 어찌나 자본의 욕망 앞에 충실한지, 약물 복용한 운동선수의 메달은 박탈해도 주주들 속이고 엄청난 이득을 갈취한 배임 횡령의 당사자는 여전히 무사하다. 덕분에 조직의 안위를 위해 모든 것을 과감히 저버렸던 그들은, 한 사람의 양심고백으로 인해 낱낱이 까발려진 생존의 노하우에 대해 쏟아지는 대중의 비난을 앞에 두고 “우리는 억울해.”를 외친다. ‘기본을 지키는 초일류’를 지향한다던 그들은 사회 전체를 흔들고 남을 부정부패를 저지른 뒤에도 여전히 당당하기만 하다.

하긴, 보다 못한 시민단체들이 고발장을 제출해도 “일단 뇌물수수 명단부터 좀 보고.”를 외치는 검찰과, “특검만은 안 돼”를 외치는 정치세력이 비호 아닌 비호를 해주는 마당에 그들이 당당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안드로메다 성운 어딘가에 묻어놓고 온 개념과 양심이 단체로 급거 귀환하지 않는 한, 그들은 계속 당당할 것이다.

욕망과 양심, 극단의 아이러니

곧 개봉할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을 보는 심정이 씁쓸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꽤 조밀한 이야기와 구성, 그리고 매우 인상적인 엔딩을 자랑하는 조지 클루니 주연의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내부고발’과 ‘산으로 간 기업윤리’를 다루는 스릴러. 앞서 언급한 ‘생존’의 전문가였던 한 남자가 문자 그대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자신의 양심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양심을 마주하는 과정은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다. 아니, 차라리 험난하다고 해야 옳다. 영화 속 인물들을 쥐고 흔드는 30억불 소송과 어이없는 스트립쇼의 이면에 내부고발과 기업윤리, 그리고 욕망 앞에 실종되어 버린 양심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익 앞에 환경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며, 성공과 출세 앞에 타인의 목숨 쯤 가볍기 그지없다. 인간적 관계를 중시한다던 사장은 당장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트립쇼의 주인공 아서를 어떻게든 하라고 마이클을 닦달하고, 심지어 의뢰사의 담당자는 자사의 이익과 자신의 출세를 위해 청부살인도 불사한다. 개개의 욕망이 부딪치며 전쟁을 하는 사이, 그 한가운데서 문제 해결을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인물을 추동하는 힘이 욕망이 아닌 양심이라는 것은 그래서 아이러니다.

지쳤지만 내던질 수 없는 것들

실상 욕망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양심을 마주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며,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선언과도 같다. 그리하여 욕망 대신 양심을 택한 자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지만 그 어느 때보다 씁쓸하다. 그것은 스트립쇼의 주인공인 아서나, 본의 아니게 영웅의 길을 걷게 되는 마이클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새로운 희망에 들뜨거나 순간의 통쾌함으로 미소짓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영광은 딱 거기까지다. 조지 클루니의 얼굴만 줄곧 잡고 있는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의 2분짜리 롱테이크 엔딩이 가슴에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부정과 부패에 맞선 내부고발은 분명 정의지만, 욕망의 투쟁만 남은 사회에서 사회적 정의는 쉽게 잊혀지고 버려진다. “밝힐 것을 밝혔으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 나라의 수준이고 현재”라던 김 변호사의 덤덤한 표정이 더없이 서글펐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 후안무치한 자본의 욕망은 여전히 분열증식 중이고, 양파마냥 벗기고 벗겨도 새롭게 드러나는 사회적 패악은 밑도 끝도 없어 보인다.

영화 속의 마이클 클레이튼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사람들은 이미 지쳐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세대를 위한 좋은 세상을 고민해 보기도 전에 지레 질려 죽을 만큼 하루가 다르게 스펙터클한 현실에서 제 정신으로 버텨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가끔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내던지면 안 되는 일들도 있는 법. 이 땅의 현실과 묘하게 닮아 있는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어쩌면 지치고 피로함에도 기어이 살아가야 하는 자들을 위해 부르는 자위의 송가인지도 모르겠다.

2007년 11월 27일 화요일 | 글_이지선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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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k209
조지 클루니 나온다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봐선 곤란...   
2008-07-17 22:49
fatimayes
헐.. 영화 보여주고도 욕 엄청 먹은...
영화의 1시간은 잘라내는것이 나을듯   
2008-05-07 16:03
firstgun
조지 클루니의 매력은 여전합니다   
2008-01-07 13:41
js7keien
스릴러 문법에 충실한,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   
2008-01-04 13:08
qsay11tem
연기가 볼만해요   
2007-12-27 14:26
lee su in
헐리우드의 지성이자 양심인 조지 클루니, 이 영화로 내년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 받을 듯 합니다.   
2007-12-08 22:20
qsay11tem
멋진 연기에여   
2007-12-08 15:22
jane8207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지만.. 세상이 쉽게 변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ㅠㅠ 그래서 보고 나서도 더 씁쓸해졌던 영화였던 거 같아요   
2007-12-0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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