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에 걸친 연타로 이야기적 결정타를 날리는 반전의 묘미는 <더 버터플라이>에 덧씌워질 이야기적 근본에 대한 의문을 벗겨내는 명쾌한 답변이자 장르적으로 감춰둔 비장의 카드다. 원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차단해버린 채 결과에서 시작되는 인과관계의 역배치는 반전에 대한 완벽한 보안을 꾀한다. 물론 어떤 전조는 있다. 영화의 반전 그 자체가 되는 어떤 인물의 표정이 찰나적으로 어색한 심기를 드러내는 순간, 나비의 운명이 어렴풋이 예감된다. 기민한 관객이라면 그 막연한 예감이 직감으로 맞아떨어지는 쾌감을 거머쥘 수도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극의 말미에 다다라야만 확인할 수 있는 결과적 산물이란 점에서 <더 버터플라이>는 반전이라는 장치적 효과의 성능을 위한 시설 배치만큼은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스포일러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 따위를 외치고 다닐 관객의 입조심이 관건인 셈이다.
숫자와 깊은 연관성을 지닌 두 배우, <007>시리즈의 피어스 브로스넌과 <300>의 제라드 버틀러의 캐릭터 대결 구도는 본 영화와 무관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젠틀한 이미지의 첩보원이 의도를 알 수 없게 사악한 악당을 맡았고, 아내에게 자상한 매너 있는 근육질 마초들의 수장의 대결이란 점에서 묘한 상상력을 부른다. 게다가 앞선 캐릭터를 통해 각인된 배우의 이미지가 역전되는 듯한 형태만으로도 그런 묘미를 더욱 되새김질하게 한다. 또한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폭력의 역사>에서 남편의 잠재된 가학성을 묵묵히 바라보던 아내 에디 스톨을 연기했던 마리아 벨로가 다시 한번 남편과 함께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는 것 또한 비슷한 뉘앙스적 재미를 준다. 물론 중후한 카리스마와 원숙한 연기력을 뽐내는 세 배우들의 매력 자체만을 즐긴다 해도 무방하다.
결국 <더 버터플라이>는 마지막 한방에 악센트를 찍는 영화다. 의도를 알 수 없게 시종일관 몸을 움츠린 채 관객이 날리는 의문의 잽을 피해 스텝을 밟으며 교묘히 달아나던 이야기가 종이 울리기 직전 카운터 한방으로 관객을 그로기 시켜야 하는 반전적 묘미는 응축시킨 이야기로부터 뻗어나간 반전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에 성패가 달려있다. 그런 점에서 <더 버터플라이>는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효과를 줄 법하다. 물론 최고의 반전 드라마로 손꼽힐 정도까진 아니라도 의외의 구석을 찌르고 들어간다는 점에서 <더 버터플라이>는 특정 장르의 기능적 목적이나 드라마틱한 반전의 효과로서 충분한 힘을 발휘한다. 동시에 그것이 단순히 인간미를 잃어버린 무분별한 쾌감의 성격이 아닌 위선의 탈을 벗기는 응징의 통쾌함이란 점에서 반전의 묘미는 탁월하다.
2007년 11월 7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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