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어깨너머의 연인>도 그런 추세를 반영한 작품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여성은 과거의 조신한 여성들과는 달리 자유로운 성적 가치관을 공유하는 변화된 여성상이다. 물론 두 여성은 각각 미혼과 기혼이라는 경험의 차이를 지니고 있는데 영화는 이것이 두 여성의 개별적인 인생관 차이를 드러내는 상징성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속옷을 짝짝이로 입어도 상관없다는 정완(이미연)과 어떻게 속옷을 짝짝이로 입을 수 있냐는 은희(이태란) 사이엔 연애의 방식은 같아도 목적의 거리감이 존재한다.
그 거리감은 영화가 주창하는 여성적 가치관이 단순히 시대에 존재하는 여성상을 묘사하는 방식에 머무는 것인가, 혹은 그 시대 안에 존재하는 여성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인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 같다. 정완과 은희는 각각 남성을 상대로 연애와 결혼이라는 비슷한 속성의 다른 결과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건 독립의 기반, 즉 물질적인 생산력을 지니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삶의 방식 때문이다. 정완은 유망한 사진작가로서 살아가는 독신 여성이다. 반면 은희는 갖고 싶은 것을 사줄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되는 남편을 둔 전업 주부다. 단지 미혼과 기혼의 차이가 아닌 능력의 차이가 발생한다. 권리를 주창하기 전에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하느냐의 문제다.
하지만 <어깨너머의 연인>은 단지 여성의 남성 편력만을 전시하며 그 뒤로 밀려오는 권태감과 무기력함을 성찰로 착각하고 있다. 그것은 발전된 여성상이라 말하기엔 어딘가 껄끄럽다. 최근 여성들의 자유로운 가치관을 다룬 영화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과감한 성적 표현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것은 항상 점성이 강한 섹스어필의 제스처를 보여주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 작년 초에 개봉한 <바람피기 좋은 날>과 같은 여성의 바람기적 일탈을 진보한 현대적 여성상으로 묘사하는 우매한 착각을 일삼는 것이다.
물론 <어깨너머의 연인>은 30대 여성들의 솔직한 대사들을 통해 그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교감을 시도하곤 한다. 단적으로 포르노 테잎을 틀어놓고 과감히 수다를 떠는 그녀들의 모습은 성적 향유가 단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선언하는듯한 묘한 쾌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단지 사랑보단 섹스가 가깝고 결혼보단 연애에 익숙한 30대 여성을 통한 여성의 시대적 가치관 변화를 단지 여성의 솔직함이라고 정의하고 쿨하다고 자위한다면 무리가 있다. <어깨너머의 연인>은 남성의 여성 편력에 대한 질투이자 그에 대한 역전의 조롱일 뿐이다. 그런 바탕에서의 성적인 솔직함은 도리어 퇴폐적이다. 결국 집안 내력에 얽힌 정완의 자립 의지는 여성의 고립성을 부각시킬 뿐이며 다시 남성의 경제력에 안기는 쪽을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는 은희는 무능력한 자신을 보좌할 남성을 통해 안주할 뿐이다. 결국 <어깨너머의 연인>은 여성의 성적 열등감을 뛰어넘지 못하고 남성의 지위적 우월성에 안주하면서 단지 성을 소재로 한 질펀한 수다를 나누는 것을 여성의 시대적 성취감인양 당당히 전시한다. 바람보다는 사랑을, 편력보다는 능력을 먼저 염두에 두는 시선이 진정 현시대의 여성을 이해하는 태도에 가깝지 않을까. 단지 솔직한 30대의 사랑이라고 이해하기엔 끝에 걸리는 성찰의 무게감이 헐겁다.
2007년 9월 20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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