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의 외모는 고스란히 지니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블록버스터의 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극적인 쾌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건 <본 얼티메이텀>이란 마침표까지의 여정을 꾸려나간 제이슨 본(맷 데이먼)의 캐릭터가 블록버스터의 항로에서 이탈한 듯한 이질감을 드러내는 덕분이다. 캐릭터를 통해 연장되는 이 시리즈는 분명 스파이물의 계보를 잇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전례가 없는 태도를 드러낸다. 하나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캐릭터가 시리즈의 사슬 노릇을 한다는 점은 제임스 본드를 내세운 <007>시리즈나 이단 헌트가 주도하는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와 맥락을 함께 한다. 하지만 앞선 두 개의 전례에 비해 <본>시리즈는 추구하고자 하는 태도적 차이가 엿보인다. 그리고 그런 차별화된 태도 전략은 <본 얼티메이텀>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할리우드에서 제조된 블록버스터 질감의 스파이물은 수구의 이념이 강하다. 어떤 희생을 불사하더라도 그들의 작전 수행은 전세계적 평화와 직결되는 사안이었고 그들은 정의의 수호자였다. 하지만 <본>시리즈는 이를 노골적으로 반박한다. 그들이 추구한 건 국가적 안보이자 궁극적으론 이기적인 국가적 이익에 국한된 사적 갈취에 불과하지 않았음을 주장한다. 세계의 정의를 수호하는 영웅으로 둔갑하곤 했던 비밀요원-<본>시리즈에 의하면 구체적으론 CIA-은 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살인도 불사하는 인간 병기였을 뿐이다. 그래서 제이슨 본의 날렵한 몸날림과 스피디한 격투씬보다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고백을 들려주는 대사에서 <본 얼티메이텀>의 극적 효과는 극대화된다. 이는 지극히 전시적인 효과로 이성적인 판단을 거세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태도에서 이례적이다.
물론 이전 시리즈를 포함한 <본 얼티메이텀>의 장기인 액션씬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지적인 이미지의 맷 데이먼이 정교하면서도 현란한 액션을 소화해낸 것은 이미 7년 전일이지만 그 후, 이 시리즈가 종착역에 닿는 순간에도 그것은 여전히 이색적이다. 마치 절권도를 보는 듯한 빠른 격투씬은 <본 얼티메이텀>에서도 유효한 쾌감을 선사한다. 또한 공항 추격씬에서 보여지는 제이슨 본의 동물적인 판단력은 디지털 눈을 따돌리는 아날로그적 쾌감마저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긴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주변의 도구를 활용해 적을 유인하거나 혹은 따돌리는, 심지어 격투의 무기로 활용하는 모습은 화려한 첨단 무기로 적을 제압하는 그 어떤 스파이물보다 실속 있는 즐거움을 안긴다.
<본 얼티메이텀>은 원경으로 잡은 도시의 풍광을 종종 비추며 그 안에 자리한 한 점 같은 인물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누군가를 통해 관찰하듯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옮겨 다닌다. 이는 마치 통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을 추적하는 작업처럼 보인다. <본 얼티메이텀>은 어떤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의 도피를 꿈꾼다. 커다란 대의로 포장하지 않은 사소한 욕망은 <본 얼티메이텀>의 종착지임과 동시에 이 시리즈의 정체성이다. <본 얼티메이텀>은 허구보단 진실에 다가서려는 소박한 정체성을 당당히 전시하는 반동적 블록버스터처럼 보인다. 물론 느낌표를 찍어줘야 할 장르의 소비적 목적을 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본 얼티메이텀>의 기본적인 탁월함이기도 하다. 그것도 전작의 단점을 깔끔하게 잊게 해준다는 점은 정말이지 바람직하다.
2007년 9월 5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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