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공수부대원들의 광주 진압 작전명을 고스란히 제목으로 옮긴 <화려한 휴가>는 그날의 기억들을 스크린에 소환한다. 우리가 단지 '알고 있던' 이야기들은 내리치는 곤봉과 발포되는 총격 너머로 터져 나오는 절규와 비명으로 인해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단순히 전해 들었던 사실을 직접 목격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그것은 <화려한 휴가>가 죄 없이 맞아 죽어가는 이들의 참담한 모습을 생생히 묘사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그 상황을 지켜보며 현장에 서있던 이들의 분개 어린 모습과 같은 심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객을 선동하진 않는다. 그건 <화려한 휴가>가 역사적 서사보단 인물적 묘사를 위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사실 <화려한 휴가>는 소재의 중압감을 극적 분위기에 전적으로 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는 때론 발랄하고 즐겁다. 이는 입담이 걸쭉한 조연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시민군이기 이전에 시민이었던 이들의 평범하고 소탈한 일상을 잘 그려내고 있는 덕분이다. <화려한 휴가>는 생생한 현장이 아닌 진실된 표정에 주목한다. 영화가 제시하는 이미지는 객관적일지라도 그것이 담고 있는 감정은 주관적이다. <화려한 휴가>는 현장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현장의 시각적 재현보다 현장에 형성된 정서를 먼저 세운다. 이는 동시에 <화려한 휴가>가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5.18이라는 역사적 연대표를 숙지하고 있다는 것 이상의 진실에 대한, 현장에 흐르던 뜨거운 피를 마주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는 작업이다. <화려한 휴가>가 시작부터 그 날보다 그 곳을 먼저 둘러보는 것도 그 까닭일 것이다. 그들이 든 총보다 총을 잡아야 했던 손을 먼저 살핀다.
물론 <화려한 휴가>는 소재의 비장함에 걸맞은 심정적인 애통함을 연출한다. 이유 없이 맞아 죽은 이의 주검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입에서 흐르는 붉은 선혈에서, 하루 아침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가족과 친구의 주검을 앞에 둔 오열로부터 전해지는 가혹함을 무덤덤하게 견디기 힘들다. 현실의 대면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건, 그 사실에 대해 진지하지 못했던 자책감, 혹은 우리도 모르게 공유해야 했던 참담한 역사의 간접 체험이 낳은 심정적 충격을 인정해야 하는 비통함 탓인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저항했던 선진시민의 의식 수준을 찬양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편했겠지만, 죽음 앞에서도 기꺼이 연대에 동참했던 인간적 장렬함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적 통증이 유발된다.
“총보다 무서운 게 뭔지 아나? 그건 사람이야.” <화려한 휴가>는 역사라는 연대표 안에서 박제처럼 밀려나버린 사람들의 진실을 기억하기 위해 애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다. 우리는 분명 어느 누군가가 피 흘려 키운 나무의 그늘 아래 있다. <화려한 휴가>는 부탁하고 있다. 기억해 달라고.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운 이름들을. 기념이란 화려한 접대 대신 관심이란 소박한 손길로. 물론 <화려한 휴가>는 상투성으로 채워진 영화다. 하지만 그 현장을 주목하기 위해 27년을 기다린 카메라는 결코 부끄럽지 않다. 그건 욕심이 아닌 신념이다. 우리가 알면서도 지나쳤던 것을 이야기하려는 신념, 그 정당한 신념에 박수를 보낸다.
2007년 7월 6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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