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본색>과 <첩혈쌍웅> 등,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 느와르의 공식들은 <익사일>에서 분해되고 재조립된다. 의리와 명령 사이를 오가는 갱스터들의 그늘진 갈등, 파멸의 곡선으로 치닫는 생의 끝자락에서 발견되는 낭만, 총성이 난무하는 긴박감 속에서도 느릿한 화면 위로 스며드는 스타일. 무엇보다도 <익사일>은 20세기 후반, 장르를 지배하던 혼돈의 공간적 배경을 옮겨 계승한다. 홍콩 반환으로 인해 스며들던 도시의 불안한 심기를 포르투갈로부터 중국에 반환되는 마카오로 잠입시킨다. 그늘진 홍콩의 습성이 마카오의 적막에 총성을 드리우고 비정성시의 기운을 담아낸다.
경찰로 대변되는 공권력이 갱들의 대립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외면할 때, 세기말적인 정서의 혼란과 제도적 균열이 동시에 난사된다. 그들이 내던지는 동전의 앞 뒷면은 달아날 수 없는 내일의 확실함만큼이나 불안하지만 막연한 현실 그 자체이며, 버릴 것조차 없는 이들이 가득 품을 수 있는 낭만의 빈 공간이다. 하지만 조직에 대한 충성과 오랜 동지와의 의리 사이를 오가던 화(황추생)의 어중간한 위치는 그런 현실을 관통하며 동시에 그 어느 것도 취하지 못한 중간자의 우직한 어리석음으로 남는다. 더불어 남성들에게 짧게나마 찾아오는 호기로운 백일몽은 파국의 결말로 치달으며 폐허 같은 낭만을 드리운다. 또한 장르적 섬세함과 박력이 물씬 풍기는 총격씬도 압권이다. 그림자진 명암 사이로 총구의 불꽃이 확연히 드러나는 총격씬은 속도의 체감을 조절하며 긴박한 쾌감을 제시한다. 또한 그 이전에 미묘한 긴장감의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것도 탁월하다.
물론 <익사일>은 거친 만큼 투박해 보일 수도 있고, 한껏 경직된 남성들의 가오는 과장된 허세처럼 거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익사일>은 홍콩 느와르적 정서와 체감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마치 죽어나간 남성들의 낭만을 비웃기라도 하듯 금괴가방을 가지고 달아나는 여성의 모습은 <익사일>이 홍콩 느와르라는 구시대적 장르의 실존에 대한 안녕을 꾀함과 동시에 그를 회고하는 작업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어쩌면 홍콩 느와르는 남성들을 위한 감성이 아닐까. 마초성을 덜어낸 고독감. 그것이 쌍권총과 선글라스라는 미장센을 만나 바바리 코트까지 걸치면 여지없이 그 시절을 추억할 수 밖에 없다. 사선을 넘는 긴박감 속에서도 선글라스를 끼는 폼생폼사적 여유, 죽음보다 중요한 의리, 그리고 정서를 타고 불을 뿜는 권총. <익사일>은 그 모든 걸 다 필름에 채워 장전한다. <익사일>은 홍콩 느와르라고 불리던 희미한 그리움에 대한 묵직한 반가움이다.
2007년 7월 2일 월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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