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3시간여 동안의 무료함을 가까스로 눌러 앉힌 기차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도착한 곳은 부산. 부산역을 빠져나와 곧바로 버스에 몸을 싣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저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바다를 지나쳐 찾은 곳은 수영만의 영화 스튜디오, <헨젤과 그레텔>의 촬영현장이다.

방안에 가득한 장난감과 벽을 채우고 있는 우화 같은 그림들. 부모의 사랑으로 채워진 아이의 방. 하지만 아이의 취향일까? 목이 잘리거나 팔이 없는 인형들의 일그러진 웃음과 초점이 없는 표정. 그로테스크한 전경. 창문 너머로 새어 드는 햇살마저도 불길한 방의 풍경은 아이의 표정을 궁금하게 한다. 문 밖으로 식탁이 놓인 맞은 편 방이 보인다. 그 방으로 고개를 들이미니 방금 전 둘러본 방의 주인인 듯한 세 명의 어린 아이가 있고, 그 뒤에 부모로 보이는 남녀가 있다. 그들의 시선이 모인 식탁 반대편, 어느 청년이 앉아있다. 그의 멋쩍은 표정만큼이나 식탁 위의 공기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파스텔 톤의 과자들과 단맛이 진동할 것 같은 초콜릿 케이크. 아이들의 생일파티일까, 하지만 부모는 그것을 식사라며 청년에게 권한다. “우린 가끔 이렇게 먹어요. 애들이 워낙 좋아해서..”

‘컷!’ 정적을 가르는 단말마 같은 외침. 숨소리조차 죽어있던 현장에 갑자기 생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방금까지 경직돼 있던 배우들의 얼굴에 살며시 여유가 스며든다. 아이들이 많은 만큼 현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원래 공포 영화 현장은 공포스럽지 않다는 속설처럼.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괴물>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던 임필성 감독은 후덕해 보이는 외모처럼 특유의 넉살 섞인 미소로 현장의 분위기를 조율한다. 아이들의 재롱은 현장의 고단함을 잊게하는 활력소다. 또한 처음으로 공포물 연기를 보이는 천정명은 귀여운 아이들의 자상한 오빠로 통하며 아역 배우들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다.

임필성 감독에게 직접 듣는 <헨젤과 그레텔>

현재 촬영은 어느 정도 진행됐는가?
현재 65% 촬영이 진행됐다. 오늘 촬영 씬은 아이들과 은수(천정면)가 대면하게 되는 초반 분량으로 사건의 본격적인 계기가 될 중요한 장면이다.

동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그 계기는?
단편을 비롯해 작품을 몇 번했지만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하는 건 처음이다. 그림 동화라는 모티브도 재미있었지만 현세대적인 문제와 접목시켰다는 점에 흥미가 생겼다. 그림 형제의 원작도 알고 보면 그 시대를 비튼 잔혹성을 품고 있다. 현대의 한국에도 비슷한 시대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기성 세대에 진입하지 않은 청년의 시각으로 풀고자 했다. 판타지가 가미된 잔혹 동화다. 기존의 관습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형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적이지도 않고, 고딕적이지도 않은.

어린 연기자들과의 촬영에 어려움은 없는가?
잔인하고 무서운 상황에 대해 에둘러 표현하지 않아도 이해가 빠르다. 영화에서 깜짝 놀랄만한 연기를 볼 수 있을 것. 마치 조카를 대하듯 애정을 가지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놀라운 연기를 보여줘서 감탄할 때도 많다. 사실 훈련된 친구들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촬영 초반에 현장 분위기가 익지 않은 당시엔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다 해결됐다. 한편으로 감독으로서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자의식이 강하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이 내 말에 반응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니까.

전작 <남극일기>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남극일기>와는 상대적으로 컴팩트한 영화다. 물론 가벼운 영화는 아니지만 대중과의 격차를 좁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작은 기후나 환경 등, 자연과 싸워가며 고통스럽게 촬영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그런 영화니 관객들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을 것 같다. 일단 <헨젤과 그레텔>은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 현장 분위기도 좋고. 일단 애들도 많고, 딱 봐도 전작과는 완전 다르지 않나? 배우들만 봐도. (웃음) 전작과 달리 세트 촬영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현재 영화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전작의 흥행 실패에도 기회가 주어졌다. 흥행에 부담은 없나?
불황기에 이런 특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예쁜 배우들과 함께 해서 좋은 영화를 완성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도 든다. 다만 흥행성을 염두에 두고 촬영하기 보단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관객과의 거리감을 좁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장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미술적인 부분과 영화의 스토리가 많은 관계가 있다. 영화만을 위한 시각적 효과를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또한 완구와 장난감 협찬을 받기 어려웠다. 정말 비싼 것도 많아서 소품 관리 스텝이 따로 관리할 정도다. 우리가 별도로 새로 제작한 것도 많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영화만의 독특함을 어필할 수 있는 미장센에 신경 쓰고 있다.

지난 2월 27일 크랭크인 된 <헨젤과 그레텔>은 제주도와 경주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마치고 현재 부산에서 세트 촬영을 진행 중이다. 돈독한 팀웍을 자랑하는 <헨젤과 그레텔>의 현장 분위기는 영화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단서다. 천정명의 첫 공포 데뷔작이자 <남극일기> 임필성 감독의 두 번째 충무로 출사표, <헨젤과 그레텔>은 올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촬영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2007년 6월 21일 목요일 | 취재: 민용준 기자
사진: 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