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은 의외의 구석으로 가득한 영화다.
<역전의 명수>을 연출했던 박흥식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전작과 완전 다른 꼴의 영화다. 김강우 손태연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커피 광고스런 포스터를 마주하며 떠올릴 법한 선남선녀의 사랑이야기도 아니고 대중적 화법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상업영화와도 한참 비껴나 있다. 속도전을 방불케 할 만큼 빠른 것이 대세인 세상에 저항이라도 하듯 느림의 미학을 전면에 내세우며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과묵하고 잔잔한 정서로 충만한 영화다.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들의 만남은 영화가 후반에 이르러서야 이뤄지고, 극적인 드라마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드러내는 방식 또한 전혀 극적이지 않다. 때문에 <경의선>은 오감을 즉각적으로 자극하는 시청각적 쾌감의 영화에 길들여진 요즘 관객에겐 지루하게 보일 수 있고, 일정 부분 사실 그러기하기도 하다. 적잖이 눈에 띄는 불필요한 장면과 찰기가 떨어지는 드라마의 밀도는 영화를 다소 따분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경의선>은 음미할 구석이 많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까지 카메라는 각자의 공간에 바싹 달라붙어 이들의 일상적 삶을 세심하게 담아내는데 이 과정이 의외의 흥미로움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전철 기관사인 만수(김강우)의 시점으로 바라본 지하철은 낯선 세계로 다가오고, 철로로 몸은 던진 한 여자의 사고로 인해 기관사인 그가 겪는 고통스런 감정의 파고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대학 강사로 생활을 꾸려가는 한나(손태영)의 모습 또한 시간강사들의 고단한 처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경의선>은 그간 한국영화에서 마주하기 힘들었던 기관사와 대학 강사의 팍팍한 일상을 곱씹게 만드는 미덕을 품고 있다. 상처를 안고 경의선에 몸을 실은 두 남녀가 우연히 임진강 역에서 조우한 후 폭설로 인해 인근 모텔에서 밤을 함께 하는 후반부는 영화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일종의 ‘연대’다. 달라도 한참 다른 이들은 낯선 곳에서 만나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절절히 토해내고 위로하며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그 고통을 치유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던 절제된 정서는 이 지점에 이르러 큰 힘을 발휘하고, 관객 또한 이들의 비루한 현실에 동참하게 된다. 또한 박흥식 감독은 두 남녀의 개별적 이야기가 임진강 역에서 합쳐지는 이 시공간을 통해 둘 사이에 놓인 계급의 문제 그리고 공간이 함축하는 남북문제까지 연대의 큰 틀에서 아우르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이 효과적으로 묘사됐다고는 볼 수 없다. 한편의 문학 단편 같은 <경의선>은 언급했듯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한번쯤 되새김질할 만한 순간과 이야기가 곳곳에 자리한 따뜻한 감성의 영화다. 더불어 돈 되는 것만을 쫓는 그들과는 달리 이 같은 작은 영화에 얼굴을 내비친 김강우와 손태영의 모습 또한 주목할 만하다. 특히, 김강우는 발견이라 할 만큼 무심한 듯 세심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2007년 5월 9일 수요일 | 글_한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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